[일본 역사+일본 문화] 2010년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붐을 일으킨 ‘조몬 시대’, ‘토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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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2

일본의 젊은이들이 조몬 시대, 특히 조몬 시대에 제작된 토우(土偶)에 큰 관심을 가지며 ‘조몬 붐’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2010년대에 있었던 일로, 2018년 여름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조몬 특별전에는 당초 목표 관람객수인 20만 명을 넘어서 총 35만 명이 관람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조몬 시대(縄文時代;じょうもんじだい)는 기원전 14000년~기원전 13000년부터 기원전 1000년~기원전 300년까지 약 1만 년간 지속된 시기로 중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데요. ‘조몬 붐’, ‘조몬 토우 붐’으로 조몬 유적지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2010년대 일본을 강타한 조몬 시대 붐, 조몬 시대에 대한 기본 지식, 대표적인 토우, 유적지 등을 소개합니다. 

<내용 소개>

◆2010년대, 왜 일본인들은 조몬 시대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토우(土偶; どぐう; 일본 발음 ‘도구’)’란? 왜 만들어졌을까?

◆조몬 시대 붐을 타고 미술품으로도 주목받게 된 토우들

◆조몬 시대 대표 유적: 사이타마현, 데노타메 유적(デーノタメ遺跡)

◆정리

2010년대, 왜 일본인들은 조몬 시대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일본에서 2010년 대에 접어들며 조몬 시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몬 시대에 해박한 문필가 곤다 아키코(譽田 亜紀子) 씨는 2018년 도쿄국립박물관 조몬 특별전을 7회나 관람하며 조몬 시대 붐에 대해 조명하는 칼럼을 연재했는데, 그 내용이 참고가 될 듯합니다.

조몬 시대 붐의 시작은 2009년, 일본 전국의 토우를 대규모로 소개한 영국 대영박물관의 기획전 ‘The Power of Dogu(토우의 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시 기간 2개월간 7만 명이 찾아 대성황을 이루었고, 2009년 말~2010년 초에 귀국전으로 ‘국보 토우전(国宝 土偶展)’이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개최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관계자들은 정말로 토우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관람객은 13만 명! 그 후 2012년에 찾아가기가 결코 쉽지 않은 시가현 미호 뮤지엄(MIHO MUSEUM)에서 개최된 ‘토우・코스모스’ 전에는 3개월간 약 6만 9천 명이 다녀가며 토우의 인기를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2015년에는 조몬 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룬 무가지 <조몬ZINE(縄文ZINE)>이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발행 부수 3만 부가 순식간에 동날 정도였고, 독자는 20~30대 여성이 많았다고 합니다. 조몬ZINE은 2020년 2월까지 총 11호가 발매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기 속에서 2018년 개최된 도쿄국립박물관 특별전 ‘조몬―1만년 미의 고동(縄文―1万年の美の鼓動)’은 2개월간 총 35만 명이 방문,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참고] <조몬ZINE(縄文ZINE)>의 웹사이트 중 지난 호 보기 페이지(표지를 클릭하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jomonzine.com/pg212.html

조몬 시대 붐의 배경 1: “SNS” 피드를 타고 확산되는 “토우” 사진들

먼저 SNS가 큰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매일 SNS에 토우 전시 사진이 업로드, 확산되었고, 인기 배우들도 코멘트로 관심과 의견을 표현했고, 각종 미디어도 이를 보도했습니다.

조몬 시대 붐의 배경 2: “조몬인들, 참 평화로웠겠다”

조몬 시대는 벼농사가 시작된 야요이 시대의 이전 시대로, 산, 바다, 강에서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식량을 가공하고, 식량 보관을 위한 광, 바구니 등을 만드는 일상을 영위했습니다. 질병이나 부상의 기록은 있으나 자연 속에서 필요한 만큼 식량을 취할 수 있었고, 큰 다툼이나 전쟁 없이 1만 년 이상 지냈다는 데서 오늘날 일본인들에게는 ‘평화로운 시대’라는 이미지로 다가온다고 하는데요. 곤다 씨는 ‘당시 일본 열도 전체에 많으면 26만 명 정도의 인구였기에, 크고 작은 다툼은 있었을지라도 무모한 전쟁을 피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고 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조몬인은, 자신의 생명을 다 사용하기 위해 곧바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들에게 나날을 쌓아나가는 것이 사람의 전부였을 것이다. 일단 하루라도 더 오래 무사히 생활하는 것.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생명을 연결하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 부여된 단 하나의 사명이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자신의 생각을 펼쳤습니다.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화산 폭발이나 대지진, 쓰나미, 그리고 한랭화 등의 자연의 위협에 좌우되면서, 자신들 인간은 이에 맞설 수 없는 정말로 작은 존재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존재(초자연적 존재)에게 기원하기 위한 도구로 토우를 만들고 주술적인 문양을 새겨 넣은 토기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곤도 씨의 생각처럼 조몬 토우는 ‘인간의 삶’을 발견하고 생각하게 해주며 인기를 모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조: 2018년 東洋経済ONLINE <空前の「縄文ブーム」背後にある日本人の憂鬱> 

‘토우(土偶; どぐう; 일본 발음 ‘도구’)’란? 왜 만들어졌을까?

조몬 시대 붐을 이끈 것은 ‘토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토우’는 무엇일까요? 왜 만들어졌을까요?

쉽게 말하면 토우는 ‘흙으로 만들어 구운 사람이나 동물의 상’을 말합니다. 현재까지 일본에서 출토된 조몬 시대 토우는 약 2만 점에 달하며, 이는 극히 일부라고 이야기됩니다. 조몬 시대가 약 1만 년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발굴된 2만 점을 포함, 전국에 6만 점의 토우가 있다고 쳐도 1만 년으로 나누면 1년에 전국적으로 6개가 만들어진 셈이 되기에 꽤 많은 토우가 여전히 땅 밑에 잠들어 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이죠.

‘토우의 정체’에 대해서는 발견된 2만 점의 토우의 공통 특징을 통해 유추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조몬 시대와 토우에 관심이 많은 후에키 아미(笛木 あみ) 씨는 칼럼에서 조몬 토우의 대표적인 공통 특징 네 가지를 소개합니다(*).

  1. 대부분의 토우가 의도적으로 부서져 있다

  2. 여성, 임신한 여성의 형상이 많다

  3. 의도적으로 사실적 표현을 피하고 있다

  4. 대부분의 토우가 붉게 칠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후에키 씨는 같은 칼럼에서 이러한 공통 특징을 통해 추정해볼 수 있는 “토우를 만든 이유”에 대한 대표적인 가설 세 가지도 소개합니다.

토우를 만든 이유 가설 1. 재생(再生) 기원・풍년 기원설

역할을 다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다시 때가 되면 생명을 갖고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조몬인들의 사생관을 반영, 토우를 만들어 ‘재생’, 즉 ‘다시 태어남’의 상징으로 삼았다는 설. 이러한 가설에서는 토우는 여성성을 반영한 여신으로 만들어졌고, <고사기> 등 신화에서 ‘곡물을 관장하는 여신을 죽이자 그 몸에서 벼와 밤, 보리 등의 곡물이 나왔다’는 내용이 있듯, 여신인 토우를 깨뜨리면서 재생을 기원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토우의 깨진 부분은 복부인 경우가 많았는데, 복부는 아이가 머무르는 장소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토우가 발견된 곳이 ‘묘’, 흙을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올려 기념비와 같은 역할을 했던 ‘모리도(盛土)’, 동물의 뼈나 깨진 도구, 사람의 유해 등이 쌓여 무덤을 이룬 ‘패총(貝塚)’ 등 죽음과 관련된 장소였다는 것도 이러한 ‘재생 기원’설을 뒷받침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의도적으로 사실적인 얼굴 표현 등을 피한 것은 토우가 인간이 아닌 ‘여신’의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고, 매일 태어나 죽는 태양의 색, 생명의 상징인 피의 색을 바른 것 또한 주술적인 의미를 담았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토우를 만든 이유 가설 2. 진혼설

사람이 죽으면 고인을 상징하는 ‘정령’의 상인 토우를 만들고 저 세상으로 가져가게 하기 위해 깨뜨려 묻어 죽음을 기렸을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깨뜨리는’ 이유는,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은 영혼일 뿐이므로 ‘의상’의 역할을 했던 육신 등은 제 역할을 다했으므로 일부러 상처를 남기는 아이누의 세계관이 조몬 시대 풍습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조몬인들은 ‘부서져야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사생관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토우에는 여성상이 많지만 남성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위에서 소개한 ‘재생 기원을 위한 여신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2의 진혼설로는 설명이 되는 점이 있습니다. 단, 조몬 시대에는 출산 중에 사망하는 여성이 많았고, 무사히 출산을 해도 젊은 나이로 죽은 경우가 많았기에 여성 토우가 많았던 것도 뒷받침됩니다.

토우를 만든 이유 가설 3. 히토가타(人形; ひとがた)설

‘인형(doll)’은 일본어로 ‘닌교(人形; にんぎょう)’입니다. 같은 한자지만 ‘히토가타’로 읽으면 고대부터 계속되어온, ‘부정’, ‘액’ 등을 사람 형태를 한 것에 옮기는 전통을 말합니다. 농경 시대에는 사람의 목숨을 유지하게 해주는 쌀을 생산하는 쌀농사가 신성시되어 모내기를 담당하는 여성인 ‘사오토메(早乙女)’들은 몸의 부정을 풀로 만든 히토가타에 옮겨 강에 흘려 보냈습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풀 대신 종이로 히토가타를 만들었고, 이후 ‘닌교(doll)’로 만들어 흘려보내지 않고 장식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히나닌교(雛人形)’의 시작입니다.

즉, 조몬인들은 ‘악령(병, 부상)’을 토우로 옮겨 악령이 씐 부분을 깨뜨린 뒤에 묻었다는 것이 ‘히토가타’ 설입니다. 이 경우, 복부가 깨진 여성 토우들이 많았던 것은 출산하며 죽는 여성들이 많던 조몬 시대의 상황상, ‘여성의 배에 악령(병, 부상)이 깃들어 있다(그러니 이것을 토우로 옮겨 깨뜨린 뒤 묻자)’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단, 토우는 연 평균 1~2개 정도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병, 부상이 있을 때마다 만든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특별한 사람(샤먼, 수장) 등을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이 부분을 설명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상 소개한 가설 외에도 다양한 가설들이 존재합니다. 1만 년 이상 계속해서 만들어진 토우인 만큼,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도 설득력 있습니다. 

*참조: 2019년 11월 7일 warakweb <土偶って何のためにつくられたの?謎だらけの正体に迫る!>

조몬 시대 붐을 타고 미술품으로도 주목받게 된 토우들

토우들은 하나같이 독특하고 기발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감에 관심을 갖고 ‘공예품’으로 여겨지던 토우를 ‘미술품’으로 조명받게 한 인물이 추상 미술로 유명한 예술가 ‘오카모토 타로(岡本太郎)’[1911~1996] 씨입니다. 그는 1950년 도쿄국립박물관의 고고학 자료 전시에서 한 구석에서 강렬한 표정을 하고 있던 토우를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후 직접 토우에 대해 조사해 1952년 <조몬 토기론(縄文土器論)>을 발표하며 이후 토우의 ‘조형미’(장식적), ‘기원미’(합장한 토우가 대표적)을 꾸준히 조명했습니다. 

조몬 시대 붐을 타고 몇몇 토우들은 ‘OO토우’ 등으로 불리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어떤 토우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참고로 조몬 시대 토우 중 국보로 지정된 토우는 총 5개입니다. 이 토우들도 함께 소개합니다. 

서광기 토우(遮光器土偶) 

‘토우=우주인설’과 함께 인기를 모은, 독특한 얼굴의 토우. 이누잇, 에스키모가 눈 보호를 위해 착용한 스노 고글인 ‘서광기(遮光器; しゃこうき; 샤코키)’를 쓴 듯 눈 부분이 과장되게 표현된 데서 이름이 붙음. 아오모리현, 미야기현 등 출토.

올빼미 토우(みみずく土偶) 

얼굴이 극단적으로 변형되어 마치 올빼미(일본어로 ‘미미즈쿠(みみずく)’)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음. 귀에는 둥근 장신구를, 묶은 머리에는 빗이 꽂혀 있는 상태로 조몬 시대의 풍속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 사이타마현에서 출토된 올빼미 토우는 중요문화재로 지정. 

하트형 토우(ハート形土偶)

얼굴이 하트형. 군마현에서 출토된 하트형 토우는 중요문화재로 지정. 

[국보] 조몬 비너스(縄文のビーナス)

[소장, 이미지 참고: 지노시 토가리이시 조몬 고고관]

임신한 여성의 배를 리얼하게 표현. 파괴되지 않고 온전한 형태로 발견된 것, 등에서의 허리까지의 곡선미 등으로 유명. 나가노현 출토. 

[국보] 가면의 여신(仮面の女神)

[소장, 이미지 참고: 지노시 토가리이시 조몬 고고관]

대형(높이 34cm, 무게 2.7kg)으로 속이 비어 있고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음. 몸통의 섬세한 문양도 특징. 나가노현 출토. 

[국보] 조몬의 여신(縄文の女神)

[소장, 이미지 참고: 야마가타 현립 박물관]

대형(높이 45cm, 무게 3.155kg)으로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토우 중 가장 큼. 반원형 머리에 구멍이 여럿 뚫려 있으나 눈, 코, 입을 표현한 것은 아닌 것이 특징. 가슴은 날렵한 ‘W 자’, 날카롭게 솟은 듯한 배, 내민 엉덩이 표현, 나팔 바지를 입은 듯한 다리 표현 등 전체적으로 현대의 조각상을 보듯 세련미가 느껴짐. 야마가타현 출토.

[국보] 합장 토우(合掌土偶)

[소장, 이미지 참고: 하치노헤시(아오모리현)] 

이름대로 두 손을 합장하듯 모으고 앉아 있는 토우. 외관상 남성상으로 보이지만 여성 성기 표현이 확실하게 되어 있는 여성상. 톡 내민 입도 특징. 아오모리현 출토.

[국보] 중공 토우(中空土偶)

[이미지 참고: 홋카이도 관광 공식 사이트]

‘중공(中空)’, 즉 속이 비어 있어서 ‘중공 토우’. 중공 토우 중에서는 최대 크기(높이 41.5cm, 무게 1.745kg). 부드러운 표정, 아름다운 보디라인, 정교한 기하학 모양 등이 특징으로 ‘북쪽의 조몬 비너스’로 인기. 홋카이도(하코다테시) 출토.

[참고] 사이타마현, 데노타메 유적(デーノタメ遺跡)에서 엿보는 조몬 시대 생활상

조몬 시대 유적으로 유명한 곳으로 조몬 시대 중기~후기에 걸쳐 약 1500년간 조몬인들이 모여 살았던 대형 집락인 사이타마현 기타모토시(北本市)의 데노타메 유적(デーノタメ遺跡)을 꼽을 수 있습니다. ‘조몬의 타임 캡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고, 학자들 사이에서 ‘100년에 한 번 있는 발견’이라고 불리는 유적지입니다. 1998년에 유적지가 처음 확인되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조몬 시대 초기에는 해수면이 낮아 혼슈, 시코쿠, 규슈 등이 모두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의 쓰가루 해협이 얼어 육상으로 홋카이도와도 왕래가 가능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것이 기원전 1만 년 무렵부터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혼슈, 시코쿠, 규슈 사이에도 바다가 생겨났습니다.

사이타마도 당시에는 바다와 지류들로 물이 풍부했습니다. 조몬인들은 물이 풍부한 곳에 마을을 이루어 살았고, ‘데노타메 유적’이 그중 대표적인 집단 취락입니다. ‘데노타메’라는 유적의 이름은 ‘데노타메’라는 저수지가 있었던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데노타메 유적의 ‘호두총(クルミ塚; 쿠루미즈카)’이라고 불리는 호두 껍데기를 버리던 장소에서 호두와 밤, 베리 종류의 씨앗, 마름, 들깨, 칠엽수 등과 함께 호두 껍데기 모양의 토기가 발굴되어 조몬인들의 식생활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참고: 2021년 3월 31일 기타모토시 홈페이지 <デーノタメ遺跡> 
조몬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 2021년 7월 홋카이도와 도호쿠 북부의 17개 유적으로 구성된 ‘홋카이도・기타토호쿠(北東北)의 조몬(縄文) 유적군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공식 웹사이트: https://jomon-japan.jp/

정리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약 10년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큰 붐을 일으켰던 조몬 시대, 그리고 그 문화의 상징 ‘토우’. 이번 기사를 통해 왜 조몬 시대 붐이 일어났는지 그 배경과 토우의 공통된 특징, 토우를 만든 이유에 대한 가설, 일본에서 인기를 모은 대표적인 토우들, 대표적인 조몬 유적을 통한 조몬 시대 생활상 등을 소개드렸습니다. 일본에서 화제가 되는 일본 역사, 일본 문화를 즐기는 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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