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서서 조그만 문고본(文庫本) 책을 보는 직장인들. 일본 여행 중에 눈에 들어오는 풍경 중 하나입니다. 일본의 책을 만날 수 있는 멋진 장소들을 소개합니다.
<내용 구성>
◆ 카레 먹고 책 구경 - 진보초(神保町) 고서점 거리
・진보초에는 왜 카레집이 많을까?
・일본 책 상식: 단행본과 문고본, 사이즈만 다른 게 아니다?
・직접 만든 책을 판매하는 서브컬처 마니아들의 행사
카레 먹고 책 구경 - 진보초(神保町) 고서점 거리
책을 좋아하지만, 일본 여행 중에도 왠지 망설이게 되는 책방 순례. 일본어 까막눈이라서, 히라가나만 뗀 정도라 책은 무리…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그런 분들에게도 ‘진보초 고서점 거리’는 추천해볼 만합니다. 그 이유는? 진보초의 상징과도 같은 ‘카레’ 때문~
진보초에는 왜 카레집이 많을까?
진보초 고서점 거리를 걷다 보면 ‘カレー(카레)’라는 간판이 군데군데서 자주 눈에 띕니다. 소박한 가게부터,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조금 고급스러운 카레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데요. 특히 통감자를 버터와 함께 즐기는 ‘쟈가버터(じゃがバター)’를 제공하는 가게들이 여럿 있는 것도 진보초 카레 신(scene)의 특징입니다.
진보초에 카레집이 많은 데 데해 궁금해하는 건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렇다 할 정설은 없지만 아름다운 가설은 존재합니다. “산 책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먹기에는 카레가 제격이다”는 설이 그것입니다. 책벌레들의 성지에 어울리는 이유죠? 또 하나의 배경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메이지 시대부터 진보초 일대에 학교가 많이 자리잡았다는 것인데요. 지금도 일본 대학의 학식 메뉴로 카레가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또한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책벌레들의 카레집, 왠지 더 맛있을 것 같지 않나요?
‘간다진보초고서점가(神田神保町古書店街;かんだじんぼうちょうこしょてんがい)’, ‘간다고서점가(神田神保町古書店街)’, ‘진보초고서점가(神田神保町古書店街)’ 등 몇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진보초 고서점 거리는 도쿄도 치요다구 간다진보초(神田神保町)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메이지 10년대(1880년대)부터 발전해온 것으로 이야기되니, 130년의 역사를 가진 서점가인 셈이지요. 고서점만 해도 140개 정도로, 도쿄 도내의 헌책 중 약 3분의 1이 이곳 진보초 고서점 거리에서 거래된다고 합니다.
진보초 고서점 거리의 특징
-
각 서점이 어느 정도 전문 분야를 갖고 있다: 문학,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일반적 분류는 물론, 외서 전문점, 예술서 전문점, 요리책 전문 고서점, 어린이책 전문 고서점 등의 전문 서점들도 많다
-
대형 출판사, 인쇄소 등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이와나미(岩波), 쇼가쿠칸(小学館; 소학관), 슈에이샤(集英社) 등 일본의 대형 출판사의 본사가 위치하고 있고, 각 출판사에서는 홀, 영화관, 카페, 갤러리 등을 운영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
매년 가을 고서 시장인 ‘간다후루혼마츠리(神田古本まつり)’를 개최한다
*神田古本まつり행사 정보 https://www.facebook.com/%E7%A5%9E%E7%94%B0%E5%8F%A4%E6%9C%AC%E3%81%BE%E3%81%A4%E3%82%8A-170510333135387/
일본 책 상식: 단행본(単行本)과 문고본(文庫本), 사이즈만 다른 게 아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책들도 사이즈가 작고 가벼워지는 추세이지만, 일본의 문고본, ‘분코본(文庫本; ぶんこぼん)’만큼 작지는 않죠. 처음 보고는 미니북인가 싶을 만큼 귀여운 문고본은 의외로 역사가 깊습니다.
문고본의 역사는 1927년 이와나미 서점의 ‘이와나미 문고(岩波文庫)’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전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게 하기 위해 작은 문고판 사이즈로 내놓게 된 것인데요. 즉, 문고본이란 ‘보급형 서적’을 가리키는 개념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분코본에 대응하는 개념은 ‘단코본(単行本、たんこうぼん)’, 즉 단행본입니다. 단행본은 전집이나 총서가 아닌 개별 도서를 가리키는 말인데요. 일본에서는 먼저 단행본으로 책을 출판한 뒤에, 더 많은 독자들에게 보급할 만한 도서의 경우는 문고본으로 다시 출간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단행본 출간-> 문고본 출간’인 셈이지요.
소설의 경우, 단행본은 기본적으로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된 것을 묶어 먼저 단행본으로 출판하고, 나중에 문고본으로 재출간되는 셈이 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연재 과정 없이 바로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카키오로시(書き下ろし)’라고 합니다.
추천 기사
힙한 문학 프리마켓, 분가쿠후리마(文学フリマ)
최근 일본의 젊은층 사이에서 화제가 되어가는 책 관련 이벤트로 ‘분가쿠후리마(文学フリマ)’를 들 수 있습니다. 약자로는 ‘분후리(文フリ)’라고도 하는데요. ‘문학’과 ‘프리마켓’을 합한 말만 보면 헌책을 내다놓고 파는 마켓인가? 하게 되는데, 헌책 판매 시장으로 역시 꽤 많은 마니아들을 거느린 ‘후루혼이치(古本市)’, ‘후루혼이치바(古本市場)’와는 또 다른 개념이라 주목할 만합니다.
직접 만든 책을 판매하는 서브컬처 마니아들의 행사
분가쿠후리마(이하 분후리)의 가장 큰 특징은 직접 만든 책을 판매하는 행사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행사가 개최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조금 차이가 있다면, ‘문학’ 프리마켓이라는 행사 이름처럼, 아트, 디자인북만이 아니라 시와 소설과 같은 전통 문학 장르의 책들이 매대에 늘어선다는 점입니다. 텍스트 위주의 책들인지라 프린트물에 컬러 표지만 더해 판매하는 소박한 느낌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책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300엔(한화 3000~4000원 정도)부터 시작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이라면 아마추어 작가들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대신 작품을 직접 프린트하여 봉투에 담아 작은 부스에 놓고 독자들을 만나는 독특한 행사입니다.
판매자들이 동시에 독자이자 구매자가 되는 것도, 판매에 목적을 두지 않고 출품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도, 그야말로 힙~ 분후리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행사는 만화,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거대 시장으로 꼽히는 ‘코미케(コミケ、코믹마켓(コミックマーケット)의 약자)’라고 하는데요. ‘문학계의 코미케’라고 하면 떠오르는 서브컬처의 분위기가 이 행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젠체하고, 무겁고, 진중한 문학은 가라~ 가볍고 힙한 문학을 만나고 싶다면 한번 관심을 갖고 찾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文学フリマ 행사 정보: https://bunfree.net/
일상을 멋스럽게, 셀렉트샵 같은 헌책방(古本屋)
진보초가 아니더라도 일본 여행 중에, 일본 생활 중에 멋스러운 서점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새 책이 아닌 헌책을 판매하는 헌책방인데도, ‘헌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근사한 책들을 셀렉트해서 판매하는 헌책방 ‘후루혼야(古本屋)’ 들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야말로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을 선사해줍니다. 책을 싸주는 커버, 스티커, 봉투까지 ‘굿즈’에 가까운 헌책방에서 작은 책 한 권이라도 꼭 구매해보시길 권합니다. 디자인으로 골라놓고, 언젠가 술술 읽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근처의 ‘古本’ ‘古本屋’를 검색해보세요!
조용하고 고즈넉한 일본 문학관(文学館) 산책
산책의 즐거움을 아는 분들에게는 문학관(文学館) 산책도 권해봅니다. 고풍스러운 건축물에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로, ‘휴식’을 제공하는 문학관들이 많습니다. 일본어도 모르는데 문학관? 하시는 분들이라면 문학관의 카페, 휴식 공간에서 커피 한 잔 마셔보시는 것도 좋겠죠? 책 대신 꽃, 나무, 정원, 숲, 햇빛, 바람을 즐기면서요~
*가마쿠라 문학관(사진) 홈페이지: http://kamakurabungaku.com/
관련 기사:
도쿄의 한적한 공원에서 책을 읽고 싶다면 -> 신주쿠교엔(<언어의 정원>),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일본 벚꽃 축제, 오다이바 해변 공원에서 레인보우 브릿지! 도쿄 공원 즐기기
도쿄의 문학, 예술 관련 공간을 찾고 싶다면 -> 도쿄 여행, 조용하고도 힙한 장소들: 모리 오가이 문학관, 나쓰메 소세키 고양이의 집, 도쿄도 사진 미술관(일본 문학, 일본 사진을 좋아한다면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