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학으로 일본어 공부, 오늘은 ‘일본 시’ 편. 일본소설보다 덜 알려져 있는 만큼, 직접 찾아보는 즐거움이 크겠죠? 직접 번역도 해보며 일본어의 어휘와 표현에 대한 감각도 쌓을 수 있고, 필사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잘 몰랐던 일본 시인들의 삶을 조금 들여다봅니다.
<내용 구성>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자기 감수성 정도는>
나카하라 추야(中原中也), <염소의 노래>
1907년 출생~1937년 사망. 야마구치현 의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대를 잇지 않고 문학에 전념, 서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350편의 시를 남긴 나카하라 추야(나카하라 주야). 일본의 애니메이션 <문호 스트레이독스>에서 소설가들 사이에서 매력을 발산하며 그의 작품을 직접 찾아 번역하는 팬들도 생겨났습니다. >> <문호 스트레이독스>에 등장하는 소설가들
프랑스 시인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를 좋아하여, 1925년 열여덟의 나이로 도쿄에 상경했을 때도 그를 랭보의 모자 쓴 모습을 따라 모자를 쓰고 긴자의 사진관에서 초상 사진을 촬영한 나카하라 추야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랭보의 유명한 초상은 삐죽삐죽한 머리의 소년 이미지이지만요.) 추야는 프랑스 유학을 꿈꾸며 현 도쿄외국어대학의 전신인 도쿄외국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결국 유학은 가지 못했지만, 프랑스어를 가르쳐 용돈을 벌고, <랭보 시집: 학교 시대의 노래>을 번역 출판했습니다. 랭보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볼 때 나카하라 추야의 번역으로 랭보 시집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독서 방법일 듯합니다.
나카하라 추야는 고등학교 교사, 작곡가, 졸업생 등과 1929년 동인지 <白痴群(백치 무리)>를 만들고, 6호로 폐간될 때까지 자신의 시와 번역 작품을 실었습니다. 1932년에는 동인지에 발표했던 시들을 포함, 그동안 쓴 시들을 모아 시집 <염소의 노래>를 출판하기로 하고 목표 금액을 설정해 친구들에게 지원금을 받았지만 150명을 목표로 한 데 대해 10명 정도만이 지원해주어 출판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2년 뒤인 1934년, <염소의 노래>가 드디어 출판사를 통해 출판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같은 해에 첫아이도 태어나고 1935년부터는 잡지 <문학계>에도 매호 시를 발표하게 되는데요. 이듬해인 1936년 첫아이가 소아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큰 충격을 받고 환청, 유아퇴행 증세를 보이며 급격히 쇠약해집니다. 그리고 일 년 뒤 두통, 시력 장애, 보행 곤란 등으로 힘들어하다 가마쿠라 역 앞 광장에서 쓰러진 이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학을 위해 상경해 랭보 시 번역과 시집 출판에 전념했던 나카하라 주야. 그의 20대가 담긴 <염소의 노래>는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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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우 사이세이(室生犀星), <쓸쓸한 물고기>
1889년(메이지 22년) 이시카와현 가나자와 출생. ‘室生’의 히라가나 표기를 작가 자신이 ‘むるう’, ‘むるお’를 섞어 사용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에 소개될 때도 ‘무로 사이세이’, ‘무로우 사이세이’, ‘무로 사이세’ 등 여러 표기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부모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절에 입양된 삶의 시작은 그의 인생 전반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양모의 권유로 의형이 다니고 있던 가나가와지방재판소에 급사로 취직했는데, 마침 직장 상사 중 하이쿠 시인이 있어 문학을 접하게 되었고, 하이쿠, 시, 단가 등을 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1909년, 스무 살이 된 무로우 사이세이는 직장의 사장과 충돌해 퇴사를 한 뒤, 이듬해 입사한 새 직장에서도 2개월 만에 퇴사. 이후에는 가자나와-도쿄를 오가며 문학 활동을 전개해나갑니다. 도쿄에 머무는 동안은 하숙을 하고, 시인들의 그룹을 참여하고 만들거나, 시를 싣는 동인지를 만들어나가며, 작가이자 편집자, 발행인으로 여러 활동들을 이어나갑니다.
1916년에 설립한 ‘감정시사(感情詩社)’에서는 동인지 <감정(感情)>을 창간하는데, 이 잡지의 2, 3호를 ‘서정소곡집(抒情小曲集)’이라는 이름 아래 특집호로 편성해 자신이 써온 시를 60편 게재합니다. 이 <서정소곡집>을 보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가 무로우 사이세이를 직접 찾아왔다고 합니다.
첫 번째 시집인 <사랑의 시집(愛の詩集)>도 감정시사에서 자비로 출판했습니다. 이 무렵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와도 알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시집을 내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 여러 문예지에 원고료를 받고 작품을 쓰게 되면서 소설을 위주로 발표했다는 것. 소설과 시 모두를 활발하게 발표하면서 이후 아쿠타가와상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게 됩니다. 자전 소설도 여러 편 썼고, 1949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쓴 <무로우 사이세이(室生犀星)>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에는 번역된 작품이 많지 않지만, <쓸쓸한 물고기(寂しき魚)>라는 작품이 번역, 소개되어 있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해 그와 고양이의 사진을 자손이 편집한 사진집도 출판되어 있습니다(<室生家には猫がゐて 愛猫白黒写真集>).
*아오조라 문고 <寂しき魚> https://www.aozora.gr.jp/cards/001579/files/53184_68739.html
다치하라 미치조(立原道造), 히아신스 하우스
1914년~1939년. 24세로 짧디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여전히 많은 팬을 갖고 있는 시인. 다치하라 미치조는 도쿄제국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이른바 ‘시인 건축가’였습니다. 도쿄제대의 건축상인 ‘타츠노 상(辰野賞)’을 재학 중 3년간 연속 수상하는 촉망받는 건축가로, 1년 후배로 전후 건축가로 활약하는 단게 겐조(丹下健三) 등에게는 그야말로 ‘동경하는 선배’였습니다. 다치하라는 졸업 후에 이시모토 건축사무소(石本建築事務所)에 입사하지만, 약한 몸으로 결핵을 얻어 입사한 다음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치하라의 이른 죽음으로 지어지지 못했던 ‘문학적’인 건축물들을 상상해보는 이들에게는, 그가 자신을 위한 별장으로 설계한 ‘히아신스 하우스(ヒアシンスハウス)’가 소중하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별장’이라고 하지만 작은 원룸 정도 크기, 화장실은 있지만, 부엌과 욕실은 없는 아담한 공간. 넓은 창문 앞의 작업 책상에서 시를 쓰고 도면을 그리는 시인 건축가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다치하라가 50매에 달하는 스케치로 꿈꾸던 작은 오두막이 그가 실제로 부지로 상정했던, 다치하라 생전에는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있던 사이타마현의 우라와(浦和)의 벳쇼누마(別所沼)에 지어진 것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국에서 기부금이 모여들었고, 건축가들이 그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도면을 작성하는 데 힘을 보탰다고 합니다.
졸업 작품으로 <아사마야마 기슭에 위치한 예술가 콜로니 건축군(浅間山麓に位する芸術家のコロニイの建築群)>을 제출한 다치하라 미치조의 생각이 마음에 전해지는 듯합니다.
히아신스하우스는 수, 토, 일요일과 공휴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자유롭게 견학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는 <다치하라 미치조 전집(立原道造全集)>이 전5권(치쿠마쇼보)으로 출판되어 있습니다.
*히아신스하우스 모임 <-시인의 꿈 계승 사업- 히아신스 하우스에 대하여> http://haus-hyazinth.org/page01-haushyazinth.htm **2017년 6월 7일 近代建築の楽しみ <2018年06月07日 - ヒアシンスハウスを見る> https://www.ohkaksan.com/2018/06/07/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자기 감수성 정도는>
1926년~2006년. 오사카 출생. 결혼 후 이름은 미우라 노리코(三浦のり子).
전공은 약학(薬学)이었지만,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보고 극작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요미우리 신문 제1회 희곡 모집>에서 가작에 선정되었고, 동화 2편이 NHK 라디오에서 방송되었는데, 시를 쓴 것은 결혼 후, 가사를 하며 시 잡지 <시학(詩学)>의 투고란 ‘시학연구회(詩学研究会)’에 시 두 편을 투고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중 한편인 <いさましい歌(용감한 노래)>가 1950년 9월호 <시학>에 실렸습니다. 삼십 대 중반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이바라기 노리코는 <시학>의 ‘시학연구회’ 작품 투고 동기와 둘이서 동인지 <카이(櫂)>를 창간했는데, 이 동인지의 2호에 한국에서 유명한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郎)가 참여하게 됩니다. 이후 시인들이 한 명 한 명 참여하게 되었고 1955년에는 첫 시집 <대화(対話)>를 출판했습니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집 중에는 <自分の感受性くらい(자기 감수성 정도는)>이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시집이 있습니다. 전체 문장은 “自分の感受性ぐらい / 自分で守れ / ばかものよ(자기 감수성 정도 / 스스로 지켜 / 바보야)”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고 들을 수 있지만 읽어보면 스스로에게 반성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1958년에 출판된 두 번째 시집인 <보이지 않는 배달부(見えない配達夫)>에 실린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일본 국어교과서에 실리면서 유명해졌습니다.
1975년 남편이 죽고, 이듬해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바라기 노리코는 시인 윤동주를 좋아했고, 꾸준히 한국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 소개하여 번역서 <한국현대시선(韓国現代詩選)>으로 1991년 요미우리문학상(読売文学賞)의 ‘연구・번역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일본어 학습자로, 일본 문학과 일본 시에 관심을 가지는 입장이라면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시인입니다. 한국어에 대한 인상과 윤동주에 대한 애정이 담긴 시 <隣国語の森(이웃나라 언어의 숲)>는 <永遠の詩 2 茨木のり子>(2009)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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