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예’와 비슷한 개념이 일본의 ‘습자’와 ‘서도’입니다. 이 둘은 일본에서 비슷하게 쓰이지만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라 그 차이와 기본 지식을 알아두면 좋습니다. 한자뿐 아니라 히라가나를 쓰는 방법도 배울 수 있는 습자, 붓을 사용하여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서도. 일상생활에서 손글씨를 쓸 일이 많은 일본에서는 각자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습자와 서도를 취미 생활로 배워나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습자, 서도와 관련한 일본 문화를 알아봅니다.
<내용 소개>
습자(習字; 슈우지)란?
‘습자(習字)’란 ‘글자(文字)를 배우다(習う)’라는 뜻으로, 일본에서는 학교 교육의 일환으로 국어 시간에 ‘습자’를 공부합니다. 1958년부터는 ‘서사(書写; 쇼샤)’라고 과목 명칭이 개정되었는데요. ‘毛筆(모우히츠)’, 즉 ‘붓’과 경필(硬筆; 코우히츠)이라고 하는 ‘연필’이나 ‘펜’으로 ‘문자를 바르고 단정하게 쓰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습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붓으로 바르게 글씨를 쓰면서 정신을 함양하는 느낌이 강했지만, ‘서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부터는 일상 생활에서 연필이나 펜으로 글씨를 쓰는 기능적인 측면이 부각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학교 교육에서는 용어 사용을 구분하고 있지만, 일상적으로 ‘습자’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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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목적에 따른 다양한 습자 강좌
일본에서는 축의금 봉투, 연하장, 이력서 등 일상생활에서 글씨를 쓸 일이 많은 만큼, 보기 좋게 글씨를 쓰고 싶어 ‘습자’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를 위해 일본습자교육재단에서는 습자 교실 등을 검색하고 입회할 수 있도록 안내한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일본습자교육재단 <일본습자>
홈페이지에는 학습 목적에 따라 다양한 강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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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바르고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쓰기 위해 기초부터 확실히 배우고 싶다 -> [한자부(漢字部)・펜부(ペン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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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장이나 노시(のし; 축의 봉투 등 경사를 위한 선물이나 증정품의 장식) 쓰기 등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글씨를 배우고 싶다 -> [생활 글씨(くらしの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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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자 사범 면허가 필요해 고급 과정을 목표로 하고 싶다 -> [한자부(漢字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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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체 가나(変体仮名)를 사용한 치라시가키(散らし書き)나 한자와 가나를 섞어 쓰는 문장을 배우고 싶다 -> [가나부(かな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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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및 일본의 고전(한자)의 필적을 공부해서 본격적인 작품 제작에 도전하고 싶다 -> [임서부(臨書部; 린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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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水墨画; 스이보쿠가)나 묵화(墨絵; 스미에)를 즐기고 싶다 -> [묵화부(墨画部)]
변체 가나(変体仮名)와 치라시가키(散らし書き)
변체 가나(変体仮名; 헨타이가나)
현재의 히라가나는 한자의 형태를 무너뜨리는(崩す; 쿠즈스) 형태로 만들어진 ‘쿠즈시지(くずし字)’입니다. 예를 들어 히라가나의 ‘あ(아)’의 경우, 한자 ‘安’를 무너뜨려 만들어진 것인데, 같은 ‘아’ 발음이라고 해도 ‘阿’, ‘愛’ 등을 무너뜨려 만든 히라가나들이 있었습니다. 즉, ‘아’ 발음에 해당하는 히라가나들의 형태가 여러 개였던 것으로, 이렇게 같은 발음이지만 형태가 다른 히라가나들을 ‘변체 가나(変体仮名; 헨타이가나)’ 또는 ‘이체 가나(異体仮名; 이타이가나)’라고 합니다. 현재는 간판이나 지명, 인명 등에서 간혹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국문학연구자료관(国文学研究資料館)에서는 이러한 쿠즈시지・변체 가나의 원리를 설명하고 쿠즈시지 읽기 퀴즈 등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참고: 国文学研究資料館 홈페이지 <くずし字って何?> https://www.nijl.ac.jp/koten/kuzushiji/post.html
치라시가키(散らし書き)
일본의 와카(和歌) 등에서는 글씨를 쓸 지면상에 문자를 분산시켜서(散らして) 배치하는 독특한 서법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를 ‘치라시가키(散らし書き)’라고 합니다.
시키시(色紙)나 탄자쿠(短冊), 편지 등 히라가나를 사용하는 경우 많이 사용된 치라시가키는 행을 고르게 쓰지 않고 행을 한 줄 띄우고 쓰거나, 행마다 시작 지점의 높이를 다르게 하거나 글씨 크기를 다양하게 쓰는 식으로 쓰여졌습니다. 먹의 농담이나 서체의 굵기 등도 자유롭게 섞어 사용하면서 꽤나 대담하고 파격적인 화면 구성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잠깐>> 시키시(色紙)란?
시가나 그림 등을 쓰고 그리는 사각형의 두툼한 종이. 예전에는 ‘치라시가키’를 위해 사용되었는데, 요즘에는 유명인의 사인을 쓰거나 졸업식 때 친구들끼리 ‘롤링페이퍼’ 느낌으로 쓰는 ‘요세가키(寄せ書き)’를 쓸 때 많이 사용되며 세로 27.3센티미터, 가로 24.2센티미터가 기본 사이즈입니다.
서도(書道; 쇼도우)란?
습자(서사)가 기본적으로 글씨를 익히고 바르게 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상대적으로 서도는 ‘표현’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습자가 ‘국어’ 과목이라면 서도는 미술 과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도 교실에서도 획순이라든지 글자의 밸런스 등도 배우지만 기본적인 학습 뒤에는 점차 표현에 중심을 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나가게 됩니다.
서도 교실에서도 습자 교실처럼 ‘경필’과 ‘모필’로 나누어 공부를 하게 됩니다. ‘경필’은 연필이나 펜으로 비교적 굵기나 농담을 표현하기 쉬워 글자의 골격을 위주로 공부하게 되고, ‘모필’은 붓을 컨트롤하는 테크닉을 위주로 공부하게 됩니다.
이러한 서도는 '다도', '카도(일본 전통 꽃꽂이)'와 함께 '전통 3도(三道)'로 불립니다.
성인들을 위한 서도 교실
성인들을 위한 서도 교실을 마련하고 있는 일본교육서도예술원(日本教育書道芸術院)에서는 <일반 코스>와 <사범양성과>로 나뉘어 서도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취미로 서도를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코스>에서는 ‘전국경서대회(全国競書大会)’라고 하는 초중고・일반이 참여하는 서도 대회를 위한 작품 준비를, 반지(半紙), 조폭(条幅), 세자(細字)로 나누어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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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半紙; 한시): 화지(和紙; 와시)의 규격 중 하나로, 서도 용지 중 가장 일반적인 종이. 일본의 초등학생들이 습자 수업 때 사용하는 종이로도 유명. 가로 25cm, 세로 35cm(A4용지보다 조금 큰 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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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条幅; 죠우후쿠): 서도 용지의 규격으로, 가로 34.5cm、세로 136cm. 족자 등으로 거는 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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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細字; 사이지): ‘가느다란 글씨’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 가느다란 붓(小筆; 코후데)으로 쓰는 서도를 말함.
붓 잡는 법, 선 긋기, 실용적인 글씨 등 기초 과정을 6개월 배운 뒤 본 과정에서 개서, 행서, 초서, 예서, 한자와 가나가 섞인 문장, 창작 등을 배워나간다고 합니다. 서도 사범 자격을 취득하고 싶은 사람들은 2년간의 커리큘럼을 수료하고 과제를 제출해 통과해야 합니다.
*참고: 전국경서대회 안내 홈페이지 http://www.sogen.or.jp/katudo/kyoushotaikai.html
여기서 잠깐>> 해서, 행서, 초서, 예서의 일본어 발음과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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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 楷書 / 카이쇼: 점과 획을 정확히 쓰는 가장 표준적인 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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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서 / 行書 / 교우쇼: 초서에 비해서는 반듯하게 글자 형태를 유지하지만, 해서에 비해서는 다소 연결해 쓰는 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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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 / 草書 / 소우쇼: 행서를 조금 더 빨리 쓸 수 있도록 개량된 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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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 / 隷書 / 레이쇼: 중국 한나라 때 서체. 해서와 비슷하며 평평하고 반듯한 느낌.
서도의 등급, ‘단위(段位; 단이)’
서도에는 등급을 나타내는 지표가 있습니다. 서도회(書道会)별로 다르지만, 학생부와 성인부로 나뉘어 ‘급’과 그 위의 등급인 ‘단’으로 되어 있고, 매달 과제 제출, 승급 시험 등을 거치면서 최고 단위인 ‘사범’ 자격을 취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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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級; 큐우): 10급부터 올라가기 시작해 1급까지. 1급 이후는 단(段)으로 넘어감. 3급 수준도 꽤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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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段; 단): 초단(初段; 쇼단)부터 2단, 3단, 4단 순으로 10단까지 올라가고 이후 준사범(準師範; 쥰시한) -> 사범격(師範格; 시한카쿠) -> 사범(師範; 시한)으로 올라갑니다. 초단부터 사범까지 10년 정도 걸리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고 하며, 사범이 된 뒤에야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된다고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서도 관련 자격 시험
일본에는 서도 교원 등을 지향하는 이들이 주로 치르는 서도 관련 자격 시험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한자를 아는지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한자를 바르게 쓰는지, ‘실기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한자를 쓰며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검정 교재 등으로 공부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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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과학성 후원 <경필서사기능검정(硬筆書写技能検定)・모필서사기능검정(毛筆書写技能検定)>: https://www.nihon-shosha.o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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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대신인가 전국서도교사자격인정시험(全国書道教師資格認定試験): 일본서작가협회에서 주최하며 문부대신의 인가를 받은 시험으로 1차~4차로 치러지며, 해서(1차), 행서(2차) 작품을 제출하고 3차(초서), 4차는 교육을 받으면서 수험, 1차~3차 시험은 각각의 시험에 합격하면 해서, 행서, 초서 준사범 자격이 주어지고, 4차 시험에 합격하면 서도교사 자격 취득 가능 https://www.syosakka.jp/kentei.html
서가(書家; 쇼카)
서도에 대한 고도의 기술을 배우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 직업인을 ‘서가(書家; 쇼카)’라고 부릅니다.’서도가(書道家; 쇼도우카)’, ‘서인(書人; 쇼징)’이라고도 합니다.
일본 서도상에서 뛰어난 서가로 알려진 헤이안 시대 초기의 3인을 ‘삼필(三筆; 산피츠)’이라고 부릅니다. 구우카이(空海)・사가 천황(嵯峨天皇)・다치바나노 하야나리(橘逸勢)로, 중국풍의 힘 있는 글씨를 썼습니다.
승려 구우카이는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로, 그가 승려이자 일본 천태종의 창시자인 사이초(最澄)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인 <풍신첩(風信帖; 후우신죠우)>이 유명합니다.
(c) 風信帖(一) 空海筆 京都 東寺蔵(昭和9年12月22日発行, <和様書道史>(尾上八郎))
서도 인구가 많은 일본에서는 직업으로 서도가가 되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앞서 소개한 사범 양성과정 등을 통해 서도 교실이나 학교에서 서도를 가르치게 됩니다. 대학, 전문대학, 단기대학에도 관련 학과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서도부(書道部; 쇼도부)와 서도 퍼포먼스
일본의 중고등학교에서는 부활동, 즉 동아리 활동으로 ‘서도부’에 가입해 활동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 학생들에게는 <전국고등학교 서도 퍼포먼스 그랑프리(全国高等学校書道パフォーマンスグランプリ)>라는 대회가 매우 중요한 목표가 될 듯합니다.
고교 야구 대회로 유명한 ‘고시엔’에서 이름을 따 약칭 ‘서도 퍼포먼스 고시엔(書道パフォーマンス甲子園)’으로 불리는 대회는 각 지방별 대회를 거쳐 결승 대회가 열리는 규모 있는 대회입니다. 지방별 대회에는 10개 학교가 참여하며, 총 15개 학교가 결승 대회를 치릅니다. 각 팀은 같은 학교 학생 15명 정도로 구성되며, ‘오네가이시마스(お願いします; 잘 부탁드립니다)’를 외친 뒤 연기를 시작해 자신들의 작품을 심사 위원들에게 수직으로 세우고, 마지막으로 ‘아리가토우고자이마시타(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마무리하게 되는데, 총 연기 시간은 7분 이내입니다.
단체 경기인 만큼 작품의 사이즈가 상당하며, 사용하는 붓도 엄청난 크기. 흑색 먹만이 아니라 컬러도 사용합니다. 매년 열리는 대회를 위해 1년간 연습한 안무를 곁들인 퍼포먼스를 펼치며 글씨를 쓰게 되니 그 에너지가 상당하겠죠? 기회가 되신다면 지방 대회를 한번 관전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참고: <전국고등학교 서도 퍼포먼스 그랑프리> 공식 홈페이지 : https://syodou-p.jp/gaiyou/#yo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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