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생활하면 가부키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일본어 표현은 물론 일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화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가부키의 기본 지식 중 가부키 배우들의 이름, 가부키 집안에 대해 알아봅니다.
<내용 구성>
◆가부키 배우들의 이름, ‘야고(屋号)’와 관련이 있다
가부키 배우들의 이름, ‘야고(屋号)’와 관련이 있다
가부키의 첫걸음. ‘가부키 배우’를 ‘가부키 약샤(役者)’라고 하며, 가부키 약샤들은 모두 특정 가부키 집안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 집안의 이름을 ‘야고(屋号)’라고 합니다. 현재 주요 야고만 해도 40개 정도가 되며 그중에서도 특히 잘 알려진 야고로 ‘나리타야(成田屋)’와 ‘오모다카야(澤瀉屋)’가 있습니다.
야고(屋号)는 가부키 배우들의 가게 이름이었다
지금은 가부키 배우들의 높은 위상을 상징하는 ‘가문’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지만, 에도시대 초기, 가부키 배우들은 ‘가와라모노(河原者)’라고 불리는 천민(賤民) 계층에 속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양반과 천민이 거주지를 달리 하였듯, 가와라모노들도 ‘가와라(河原)’라는 물가 지역에 살았는데요. 물을 쓸 일이 많은 도축업자, 피혁업자들을 비롯해 우물 파는 사람, 정원 만드는 사람, 행상, 가부키 배우들도 가와라에서 가와라모노로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가부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부키 배우들은 서민들이 장사를 하며 사는 거주지인 ‘오모테도리(表通り)’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인 거리에 살게 되면서 가부키 배우들도 화장품, 장신구, 일용품, 약 등을 판매하게 되었는데, 이때의 가게 이름이 ‘OO屋’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에 ‘가부키 집안’이라고 불리는 ‘야고’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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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가부키 배우의 이름은 대대로 전승된다: 묘세키(名跡)와 슈메(襲名)
야고가 가게의 이름이라고 할 때, 각 가게의 주인의 이름이 따로 있겠죠? 그런데 가부키에서는 가게 주인들이 누군가에게 이어받은 이름, 즉 ‘묘세키(名跡)’를 이름으로 사용합니다. 이렇게 선대의 이름을 전승하는 문화를 가리켜 ‘슈메(襲名)’라고 합니다.
二代目(니다이메; 2대째), 三代目(산다이메; 3대째) 등을 묘세키 앞에 붙어 이름이 완성됩니다.
가부키에서 특정 묘세키를 사용하는 것은 그 묘세키를 사용했던 사람의 예술적인 경지를 이어받는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죠. 가부키 배우들 중 높은 경지의 연기를 보여준 묘세키인 ‘다이묘세키(大名跡)’의 경우 다른 묘세키들과는 급을 달리하는 그야말로 ‘큰 이름’입니다. 이런 다이묘세키들을 따르는 가부키에서의 가문 개념을 ‘OO家(OO케)’라고 합니다.
같은 ‘이치카와(市川)’라는 성을 쓰더라도 야고가 다를 수 있습니다. 현재 활약 중인 4대째 이치카와 엔노스케(市川猿之助)의 경우 야고는 “오모다카야”입니다. 묘세키를 이어받을 이가 없을 때에는 다른 가문에서 양자를 들이기도 하기 때문에 실제 형제라도 다르 야고에 소속되어 활동하기도 합니다.
야고에도 등급이 있다
가부키 세계에서는 오래된 야고일수록 높은 등급에 랭크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렇게 매겨진 등급을 ‘가쿠즈케(格付け)’라고 합니다. 그 역사로 톱5로 불리는 야고와 가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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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야(成田屋) - 이치카와 단쥬로케(市川團十郎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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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와야(音羽屋) - 오노에 키쿠고로케(尾上菊五郎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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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라이야(高麗屋) - 마츠모토 코시로케(松本幸四郎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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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야(中村屋) - 나카무라 칸자부로케(中村勘三郎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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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코마야(成駒屋) - 나카무라 우타에몽케(中村歌右衛門家)
여기에 각 배우들의 실력과 흥행면에서 다시 가쿠즈케로 랭킹이 매겨지기도 합니다. 역사와 실력 모두를 평가받는 가부키 세계, 흥미롭습니다.
가부키와 뗄 수 없는 이름, 이치카와 단쥬로
‘에비조’,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다
유명한 가부키 배우를 통해 슈메와 묘세키에 대해 알아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겠죠? ‘에비조(海老蔵)’라고 불리는 일본의 대표 가부키 배우의 이름을 살펴봅시다.
>>정식 이름: 쥬이치다이메 이치카와 에비조(十一代目市川海老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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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호리코시 타카토시(堀越 孝俊(옛날 본명)-> 堀越 寶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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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세키: 이치카와 에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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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 나리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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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이치카와 단쥬로케(市川團十郎家)
가부키에서의 이름 전승, 즉 ‘슈메’는 한 번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몇 단계로 나누어져 이루어집니다. 한 사람이 이름을 바꿔가며 활동한다는 것. 현재 활동하는 ‘에비조’가 묘세키를 물려받은 초대 이치카와 에비조(1660~1704)는 이후 초대 이치카와 단쥬로(市川團十郎)가 됩니다. 가부키에서 가장 유명한 묘세키로, 가부키의 종가(宗家; 소우케)라고 불리는 ‘이치카와 단쥬로’. 이 이름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었음을 인정받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와 같은 다이묘세키를 이어받기 위해서는 긴 시간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는 수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2019년 1월, 이치카와 에비조가 2020년에 ‘이치카와 단쥬로’의 묘세키를 ‘슈메’, 계승한 ‘쥬산다이메 이치카와 단쥬로(十三代目市川團十郎)’가 된다고 발표되어 가부키 팬들에게는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나리타야 이치카와 단쥬로・이치카와 에비조 공식 사이트 http://www.naritaya.jp/
‘이치카와 단쥬로’는 누구?
‘이치카와 단쥬로’라는 이름은 ‘아라고토(荒事)’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라고토란, 여러 가부키 작품에 등장하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정의의 용사 역할’, ‘거칠고 호쾌한 연기 스타일’을 가리키는 말로, 초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확립했고 에도 가부키에서 큰 인기를 얻어왔습니다. ‘단쥬로’라는 이름을 계승한 이들이 아라고토를 뛰어나게 소화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이치카와 단쥬로가 가부키 역사에서 중요한 또 하나는 ‘가부키 쥬하치방(歌舞伎十八番)’입니다. 7대째 이치카와 단쥬로가 집안 대대로 전승할 목적으로 제정한 18개의 공연을 말합니다. 나리타야 이치카와 단쥬로 가문의 ‘비전’의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죠.
11대째 에비조 이전에 이치카와 단쥬로의 이름을 계승한 가부키 배우들은 역대 총 12명. 직전의 12대째 이치카와 단쥬로(11대째 에비조의 아버지)는 2013년 세상을 떠났으니 약 7년간 단쥬로의 이름을 사용하는 가부키 배우는 없었던 것인데요. 그만큼 에비조 배우로서도 이치카와 단쥬로 가문과 나리타야로서도, 가부키 전체로서도 초대형 이벤트입니다. 예정대로라면 2020년 5월에 13대째 이치카와 단쥬로로서의 무대에 서며 수많은 가부키 팬들을 불러모아야 했지만, 코로나의 여파로 기념 공연이 계속 연기를 거듭했고, 이치카와 단쥬로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서는 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참고]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연을 선보인 이치카와 에비조가 선보인 가부키 공연 <시바라쿠(暫; しばらく)>
영웅물인 '아라고토'의 대표 작품으로, 이치카와 단쥬로 집안에 대대로 전해지는 18개의 작품인 '가부키 18번(歌舞伎十八番; 가부키쥬하치방)' 중 한 작품입니다. 죄없는 선남선녀가 악인에게 붙잡혀 모두 죽임을 당할 위기의 순간, '시바라쿠(しばらく)~'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며 등장한 주인공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위풍당당하게 모두를 구해내는 이야기. 9대째 이치카와 단쥬로가 메이지 28년(1895년)에 연기한 대본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귀족의 모습을 한 악인 역의 이름은 '기요하라노 타케히라(清原武衛)', 주인공의 이름은 '가마쿠라곤고로 우카게마사(鎌倉権五郎景政)'입니다.
강한 힘을 보여주기 위해 의상, 가발, 소도구 등을 과장하여 표현하는 것이 특징. 얼굴의 화장(구마도리)은 '스지구마(筋隈)'라고 불리는 화장. 얼굴을 희게 칠하고 그 위에 붉은색으로 패턴처럼 힘줄(스지; 筋)을 그려넣습니다. 턱에 삼각을 칠하고, 턱선을 따라 붉게 칠한 뒤, 눈썹은 얼굴의 힘줄과 조화를 고려해가며 바깥으로 뻗어나가듯 검은색으로 칠합니다. 옷도 실제보다 크게 만들어졌고, 칼도 약 3미터로 실제보다 큰데, 이 모든 것이 힘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위의 이미지가 <시바라쿠>의 한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참고로 큰 옷의 정사각형이 세 개 겹쳐진 문양은 이치카와 단쥬로의 '나리타야'의 문양 '미마스(三枡)'입니다. 마스(枡), 즉 '되'가 세 개 겹친 모양이죠.
*일본예술문화진흥회 문화디지털라이브러리 "가부키사전" 중 "가마쿠라곤고로(鎌倉権五郎)" 항목 참고 https://www2.ntj.jac.go.jp/dglib/modules/kabuki_dic/entry.php?entryid=1078
가부키 배우들의 별명, ‘하이묘(俳名)’
하이묘(俳名)란, 본래 하이쿠 시인들의 필명으로, 가부키 배우들이 편하게 사용하는 이름으로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스승, 가문의 이름이기도 한 이름을 무겁게 느끼기에 조금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닉네임, 예명으로 활동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13대째 이치카와 단쥬로의 풀네임은 ‘十三代目市川團十郎白猿(쥬산다이메이치카와단쥬로하쿠엔)’으로, ‘白猿(하쿠엔)’이 바로 ‘하이묘’입니다.
그런데 이 ‘하이묘’는 5대 이치카와 단쥬로(1741~1806)가 ‘이치카와 에비조(市川蝦蔵)’로 이름을 개명하면서 사용한 하이묘였습니다. 또 이 하이묘는 2대 이치카와 단쥬로인 ‘栢筵(하쿠엔)’과 발음은 같고 한자를 달리한 하이묘였죠. ‘원숭이는 인간에 비해 머리털이 세 개 부족하다’라는 속설에 빗대, 자신이 선대에 비해 부족한 배우라는 것을 겸손하게 나타난 하이묘였습니다. 13대째 이치카와 단쥬로는 선대에 비해 많이 부족한 이치카와 단쥬로로서 무대에 서면서 이 하이묘를 계승하기로 한 것입니다.
가부키 공연장, ‘座’, 가부키 공연과 ‘興行’
歌舞伎座(가부키자), 博多座(하카타자), 大阪松竹座(오사카쇼치쿠자), 南座(미나미자). 가부키 공연장에는 ‘座(자)’라는 말이 붙습니다. 가부키의 공연을 ‘公演(코엔)’이라는 말 대신 ‘興行(코교)’, 즉 ‘흥행’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코엔’이 말 그대로 예술로서의 가부키 무대를 말하는 것이라면, ‘코교’의 경우 ‘영리를 목적으로 가부키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에도시대 중반 부터는 막부의 허가를 받아야 가부키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공연할 권한’을 뜻하는 ‘흥행’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十三代目市川團十郎白猿襲名披露の興行>. 신문에서 이러한 타이틀을 보게 된다면, 이제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죠? ‘13대째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이름 계승 기념 가부키 공연’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어려운 가부키 배우들의 이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가부키 작품, 공연에 대해서도 조금 관심을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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