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름에 <전설의 고향>이 있다면, 일본에는…?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게 해줄 일본의 대표 괴담들을 소개합니다! 단, 괴담 자체보다는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므로 무섭지 않습니다.
<내용 구성>
◆ <怪奇特集!! あなたの知らない世界(괴담특집!! 당신이 모르는 세계)>
일본어에는 "계절 느낌을 잘 나타내는 사물, 풍경, 행사 등"을 가리키는 “후부쓰시(風物詩)”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중 나쓰노후부쓰시(夏の風物詩), 즉 “그래! 여름하면 이거지!” 하고 느끼게 하는 것 중 늘 꼽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괴담((怪談)’!
무더운 여름이 한몫했을까요? 일본의 괴담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면서 ‘즐길거리’가 되어왔습니다. 대표적인 책, 방송, 문화 등을 통해 일본 괴담의 역사를 따라가볼까요?
『雨月物語(우게쓰모노가타리)』
비(雨), 달(月), 이야기(物語)… 제목부터 밤안개가 피어오를 듯하니, 잘 지은 제목이죠? 에도시대 후기인 1776년에 일본・중국의 고전에서 9편의 괴이소설(怪異小説)을 모아 출간된 책으로 일본 근세문학의 고전으로 꼽힙니다.
『우게쓰모노가타리』의 대표작, 「국화의 약속(菊花の約)」
때는 초여름. 둘도 없는 우정으로 의형제까지 맺은 두 남자 중 한 남자 소우에몬(宗右衛門)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 남은 한 남자 사몬(左門)에게 “국화의 절구(9월 9일)에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9월 9일. 左門은 아침부터 宗右衛門을 맞이하기 위해 청소, 요리 등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宗右衛門. 그러나 左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이윽고 밤이 되어 左門은 할 수 없이 방으로 돌아오는데… 宗右衛門가 그림자로 찾아옵니다. 左門과 술과 음식을 대접해도 역정을 내는 듯 이상한 태도를 보이는데... 左門이 이유를 묻자, “나는 사실 유령이다.”라고 대답하는 宗右衛門. 감금이 되어 左門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자, “사람은 하루에 천 리를 갈 수 없지만, 혼은 하루에 천 를 간다”는 말을 떠올리고 자결, 혼이 되어 左門을 찾아온 것입니다. 유령 宗右衛門이 이 사실을 전하고 사라진다는 무섭다기보다는 어쩐지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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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物語(햐쿠모노가타리)
100개의 이야기? 「百物語(햐쿠모노가타리)」는 괴담 그 자체라기보다 ‘괴담 대잔치’, ‘괴담의 향연’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 ‘괴담을 이야기 모임, 그 방식’을 가리킵니다.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 오프라인으로 괴담을 이야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괴담 100개를 이야기하면, 진짜 모노노케(物の怪; 죽은 영(사령)과 살아 있는 영(생령)을 가리키는 말)가 나타난다”고 전해지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무라마치시대 말~에도시대 초에 쇼군을 모시던 전문 이야기꾼들인 “오토기슈(御伽衆)”들에게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고 합니다. 물론 재미도 있지만, “肝試し(키모다메시)”, 즉 담력테스트용으로 시작되었을 거라고 합니다. 100개를 듣는 것도 견뎌야 하고, 그 후에 나타날 “모노노케” 또한 상대해야 하니 말이죠.
그러나 괴담의 끝에 무서운 일들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천장에서 떡이나 금화가 떨어진다거나, 100개의 괴담을 다 들은 이가 출세를 한다든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햐쿠모노가타리, 괴담 이야기 모임의 형식
- 신게츠(新月), 즉 초승달이 뜬 밤에 몇 명 정도의 그룹으로 진행한다. 장소는 모인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집, 2간(間)이나 3간 정도의 방이 좋다(1간(間): 182cm). 방 세 개가 L자형인 곳을 추천!
- 참가자가 모이는 방은 불을 켜지 않는다. 그 옆방도 불을 켜지 않고, 제일 구석에 있는 방에 100개의 심지를 밝힌 안동(行灯; 초롱)을 켜놓고, 책상 위에 거울을 놓는다. 초롱에는 푸른 종이를 바른다.
- 참가자는 푸른 옷을 입고, 허리에 칼을 차거나 하지 않고 입실한다. 그 밖의 위험한 물건들도 방에서 치운다. (마귀를 물리친다는 목적으로 칼을 차거나 하기도 했으므로)
- 괴담 하나가 끝나면, 손을 더듬어 가며 옆방을 지나 구석 방으로 간다. 초롱에서 초를 하나 꺼내 끄고, 책상의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원래 방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남은 사람들은 이야기를 계속해도 된다.
-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괴담’이란 유령, 요괴가 등장하는 괴담이 아니라 신기한 이야기, 인연설 같은 것도 좋다.
99개의 이야기까지만 하고, 아침이 오기까지를 기다리는 방식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모노노케를 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라는 이들이 즐겨 하던 방식이라고 하네요. 양초가 생긴 이후에는 방 안의 중심에 초를 밝혀놓고 진행되는 식으로 변주되기도 했다고 하고요. 100개의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100개의 초가 모두 꺼지고 진정한 어둠이 오면, 뭔지 모를 진짜 정령이 나타난다! 실제로 나타났다는 설도 있으나 믿거나 말거나! 100개의 이야기를 정말 다 하는 모임들이 있었다고 하는 게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놀랍기만 합니다.
100번째 이야기를 시작할 때, 또는 끝날 때 나타나는 요괴, “아오안돈(青行燈)”
길고 검은 머리에 뿔이 달린, 이를 검게 칠하고 흰 옷을 입은 여자 요괴로 그려진 그림들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요괴들은 <궁금한 일본 문화: 일본 요괴와 친해지기(유령과의 차이, 유명한 요괴들과 그림, 책 소개)> 기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모노가타리' 하면 '겐지모노가타리', '헤이케모노가타리'와 같은 고전 문학이 떠오르시나요? 이 작품들에 대해 소개한 <모노가타리(物語)란? <겐지모노가타리>(+<베갯머리 서책>), <헤이케모노가타리>를 재밌게 즐기기 위한 기본 지식> 기사도 읽어보세요~
<怪奇特集!! あなたの知らない世界(괴담특집!! 당신이 모르는 세계)>
1968년~1987년 니혼테레비에서 방송된 <お昼のワイドショー(오히루와이드쇼)>에서, 매주 수요일(1973년~1978년 6월) 또는 목요일(1979년 7월 부터), 여름 휴가철(오봉 시즌) 등에 방영된 특집 코너였던 <怪奇特集!! あなたの知らない世界(괴담특집!! 당신이 모르는 세계)>. 일반 시청자들로부터 직접 겪은 공포, 심령 체험 등을 수집해 재현 드라마, 취재 등으로 엮고 이를 영력이 강한 관계자 등이 분석, 해설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입니다. 무척 인기가 많아 여름뿐 아니라 봄, 겨울 등의 장기 휴가 때 2주 정도 매일 방영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괴담 전문가, 니이쿠라 이와오(新倉イワオ)
일본심령과학협회이사이자 방송작가인 니이쿠라 이와오 씨. 일본 방송 최초로 심령 프로그램을 기획, 직접 심령 체험 등을 분석, 해설하는 해설가로 30년 동안 활약한 유명인입니다.
『新耳袋(신미미부쿠로)』
새로운, 귀, 봉투? “미미부쿠로(耳袋)”라는 표현이 재미있지요? 『미미부쿠로』는 에도시대 중기부터 후기까지 약 30년 동안 쓰인 전10권의 잡담집입니다. 기담이나 잡담을 집대성한 『미미부쿠로』에서 이름을 빌려온 『신미미부쿠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현대판 미미부쿠로로, 영화와 만화의 원작으로 일본 현대판 괴담의 고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하라 히로카쓰(木原浩勝)와 나카야마 이치로(中山市朗) 두 명의 작가가 취재를 바탕으로 써냈으며, 1990년에 처음 출간된 『신미미부쿠로』에는 이런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당신 주변의 무서운 이야기(あなたの隣の怖い話).”
오키쿠(お菊)라는 여인의 유령이 우물 속에서 밤이면 밤마다 “한 장, 두 장…” 하고 접시를 세는 일본판 “귀신 이야기”로 유명한 <사라야시키(皿屋敷)>. 비슷한 이야기가 일본 전국적으로 발견되는 고전 괴담으로 가부키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각색되기도 했습니다. 혹시 이 이야기를 듣고 유명한 일본 공포물의 대명사 <링(リング)> 시리즈의 사다코를 떠올리는 건, 지나친 해석일까요?
일본어로 담력 테스트를 '기모다메시(肝試し、きもだめし)'라고 하죠. '기모'가 '간'이라는 뜻, '다메시(試し)'가 '시험', '테스트'라는 뜻이니, '간이 얼마나 큰지 한번 보자'는~ 언젠가 일본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 한국의 <전설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 지금까지 들었던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줘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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