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좋은 점? 그동안 조금 서먹해졌던 ‘책’과 가까워질 시간을 만들어주었다는 것. 산으로 바다로 실컷 다닐 수 없지만, 소설 속에서는 자유로운 독자의 몸! 여름 휴가와 참 잘 어울리는 일본 소설 중 일본의 여름을 잘 느낄 수 있는 소설 네 편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책을 읽고 좋았다면 영화로도 볼 수 있는, 영화화된 소설들이기도 합니다.
<내용 구성>
<요노스케 이야기> by 요시다 슈이치
일본어 원제: 横道世之介 / 저자 일본어 이름: 吉田修一
이런 분께 추천>>
- 이왕 여름 휴가이기도 하고, 단편보다 조금 두툼한 장편소설이지~ 하는 분
- 일본 버블 시대가 대단했다는데… 그 시절 대학생들 이야기? 재미있을 듯! 싶은 분
소설도 소설이지만 영화화된 원작 소설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요시다 슈이치. 영화화된 <악인>, <분노> 등이 굵직한 범죄 스릴러물이라면, 역시 영화화되어 넷플릭스에도 공개되어 있는 <요노스케 이야기>는 청춘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노스케 이야기>의 주인공인 ‘요코미치 요노스케’는 1980년대 후반, 출신지인 규슈에서 도쿄로 상경한 대학 신입생입니다. 1년 동안 도쿄에서 대학 생활을 해나가는 요노스케의 이야기가 일본 대학의 입학 시기인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월별로 장이 나뉘어 펼쳐집니다.
<요노스케 이야기>의 장별 구성(한국어판)
4월 벚꽃 / 5월 황금연휴 / 6월 장마 / 7월 해수욕 / 8월 귀성 / 9월 신학기 / 10월 열아홉 살 / 11월 학교 축제 / 12월 크리스마스 / 1월 새해 / 2월 밸런타인데이 / 3월 도쿄
목차에서도 벌써 일본 생활이 물씬물씬 느껴지는데요. 5월의 황금연휴는 유명한 ‘골든위크(GW)’, 8월의 귀성은 조상님들을 맞이하고 보내는 일본의 대표 명절인 ‘오봉(お盆)’, 11월 학교 축제는 대학생활의 꽃인 ‘문화제(文化祭;분카사이)’, 1월의 새해는 연말연시 연휴인 ‘오쇼가츠(お正月)’. 하나하나 포스팅으로 소개할 만한 ‘the(ザ) 일본’ 콘텐츠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습니다.
작품 감상 포인트>>
상경한 요노스케는 학교까지는 전철로 한참을 가야 하는 교외의 허름한 아파트에 살게 되는데요. 그러나 당시는 1980년대 후반, 일본 사회・문화를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단골 테마인 ‘버블 시대’였습니다. 고급 호텔 보이(ボーイ;벨보이)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엄청난 수입을 올리게 되는 요노스케의 모습이 시대 문화를 잘 느끼게 합니다.
또 하나, 이 소설을 ‘여름 특집 일본 소설’로 소개하게 된 이유는 7월, 8월에 벌어지는 ‘어떤 사건’ 때문인데요. 도쿄에 상경해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온 요노스케는 일생 동안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조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지금 바로 독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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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강 밤배> by 요시모토 바나나
일본어 원제: 白河夜船 / 저자 일본어 이름: よしもとばなな
이런 분께 추천>>
- 요시모토 바나나 원작의 영화, 다른 소설을 읽고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진 분(장편보단 단편집! 파)
- 장마 같은 답답함, 자도 자도 졸려운 나른함을 아름다운 불꽃놀이로 마무리하며 여름을 정리하고 싶은 분
일본 소설가 하면 요즘은 ‘히가시노 게이고’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일본 소설 하면, ‘요시모토 바나나’와 <키친>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 수영이 주연한 <막다른 골목의 추억>, 여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바다의 뚜껑> 등의 영화 원작자로 한국 독자들에게 그 작품이 다시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이번 여름 휴가에는 <하얀 강 밤배>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인 ‘白河夜船(시라카와요후네)’는 글자 그대로 ‘하얀 강 밤 배’라는 뜻인데요. 일본에서는 관련 고사를 갖는 사자성어로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옛날에 교토에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네요. 그런데 그만 교토의 ‘시라카와(白河)’에 대해 아는지 질문을 받았답니다. 아마도 강(‘川(가와)’) 이름이겠지 싶어서 “밤에 배를 타고 지나서 잘 모르겠다’고 적당히 둘러댔는데… 실제로 시라카와(白河)는 강이 아니라 ‘가모가와(賀茂川; 鴨川)’부터 ‘히가시야마(東山)’에 걸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고사에서 1)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척한다 2) 너무 깊이 잠들어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작품 감상 포인트>>
소설 <하얀 강 밤배>는 2)의 의미를 작품의 테마로 가져와, ‘어느 날부터 자도 자도 계속 잠이 쏟아져서’ 결국엔 잠자는 시간이 깨어 있는 시간보다 더 많아지고, 연인의 연락도 받지 못하고 일상생활도 힘들어지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주인공이 왜 그렇게 잠이 쏟아지게 되었는지, 그 답을 찾아가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읽다 자다 읽다 자다 하면서, 그동안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피로감의 근원을 찾아보는 것도, 휴가에 어울리는 멋진 독서법이 아닐까요?
이 소설도 2015년 영화화되었는데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만비키 가족>으로 잘 알려진, 실력파 배우 ‘안도 사쿠라’가 여주인공을, 일본 영화 좀 봤다고 하면 그 얼굴과 존재를 익히 알고 있을 ‘이우라 아라타’가 남자 주인공을 맡았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 자신이 이 영화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할 만큼, 뛰어난 연출로 소설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잠에서 조금 깨어난 주인공이 연인과 함께 유명한 스미다가와(隅田川) 하나비대회(花火大会)를 관람하는 것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입니다.
<서쪽 마녀가 죽었다> by 나시키 가호
일본어 원제: 西の魔女が死んだ/ 저자 일본어 이름: 梨木香歩
이런 분께 추천>>
-여름방학을 보냈던 할머니집에서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분
-도시에서의 생활에 힘들고 지친 분, 산책하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청정 소녀들(만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
-’마녀’라는 단어에 설레고, ‘동화’를 좋아하는 분
읽고 나면 꼭 누군가에게 추천하게 되는 소설 <서쪽 마녀가 죽었다>. 제목만 들어도 뭔가 전해져오는 소녀스럽고 동화스럽고 마녀스러운 분위기. 아동문학으로 출간되었지만 그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에 가기를 거부하게 된 ‘마이’는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의 집에서 자신을 ‘마녀’라고 부르는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마녀이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작품 감상 포인트>>
외할머니는 영국인. 일본인인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숲속에서 혼자 조용히 살아가는데요. 그 삶의 모습은 ‘마녀’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연을 제대로 느끼고 즐기며,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외할머니가 ‘마녀’인 이유는, 자연의 힘을 제대로 이해하고 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도 상처받은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 어느 숲속으로 가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듯한, 정말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듭니다. 도시에서 힘들어 하는 것들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 이상 자신을 탓하지 않게 되는, 묘한 소설입니다. 2008년에 영화화 되어 새벽 숲 이슬을 헤치고 산딸기를 따 잼을 만드는 아름다운 순간을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라스트 레터> by 이와이 슌지
일본어 원제: ラストレター/ 저자 일본어 이름: 岩井俊二
이런 분께 추천>>
-이와이 슌지, 영화 <러브레터>, <4월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
-짧은 여름에는 왠지 소나기 같았던 ‘사랑’이 떠오르시는 분
영화 <4월 이야기>의 여주인공 마츠 다카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후쿠야마 마사하루,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히로세 스즈, <날씨의 아이>의 모리 나나가 주연을 맡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캐스팅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영화 <라스트 레터>. 아직 한국에서는 영화를 개봉하지 않은 시점에서 최근 소설이 번역되어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먼저 읽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품 감상 포인트>>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첫 소설을 쓴 뒤 별다른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주인공(영화 속 후쿠야마 마사하루). 작품은 그 첫사랑의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영화에서 히로세 스즈가 주인공의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과 그녀의 딸 역할을 맡는데요. 이렇게 같은 배우가 1인 2역을 하는 것은 영화 <러브레터>에서도 이미 선보인 바 있죠. 영화에서 마츠 다카코는 어른이 된 첫사랑의 여동생 역을, 모리 나나는 어린 시절 첫사랑의 여동생 역과 어른이 된 마츠 다카코의 딸의 연기를, 역시 1인 2역으로 맡습니다. 영화에서 1인 2역이라는 장치를 사용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소설에서는 어떻게 담아내는지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일 듯합니다. (마츠 다카코/모리 나나가 연기한 여주인공의 첫사랑 선배는 자신이 아닌 언니를 좋아했습니다. 엇갈린 첫사랑!)
<러브레터>의 무대는 홋카이도의 오타루죠. <라스트 레터>의 무대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고향이기도 한 센다이입니다. 시골 본가와 결혼해 사는 도시의 집을 오가며, 자신과 죽은 언니를 똑닮은 두 소녀(조카와 딸)을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여주인공(마츠 다카코역)의 주위로 푸르른 여름이 펼쳐집니다. 역시 여름은 ‘첫사랑’과 잘 어울리는 계절인 듯합니다. 한때 소중했던 누군가에게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내봐도 좋겠습니다.
*영화 <라스트 레터> 일본 공식 사이트: https://last-letter-movie.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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