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릇은 참 다양하고 느낌이 좋던데, 어떻게 고르고 사용하면 좋을까? 일본의 유명한 도자기 산지와 그릇에 담긴 일본 문화를 들여다봅니다.
<내용 구성>
일본 그릇과 서양 그릇의 차이
일본 그릇, ‘와쇽기(和食器)’는 서양의 그릇과 달리 직접 손에 들고 먹는 경우가 많아 촉감이나 온기를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어려서부터 쓰던 정든 밥그릇을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 가져가 계속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릇을 손에 들고 사용하는 문화와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 그릇은 세트 구성이 일반적으로 손님 접대용 등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 그릇은 세트 구성보다는 그릇 하나하나의 매력을 더 중시하는 것도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카게(日陰)와 히나타(日向): 그늘과 양지
일본에서 그릇을 갖출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으로 ‘음(陰)과 양(陽)’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히카게(日陰 ;그늘)’와 ‘히나타(日向 ;양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요. 사각형 등 각진 형태의 그릇, 남색, 검은색 등 짙고 깊은 색의 그릇은 ‘히카게(그늘)’에 해당하는 그릇, 원이나 타원형의 그릇, 색을 입히지 않은 키나리(生成り)나 연한 갈색 등 밝은 색의 그릇은 ‘히나타(양지)’에 해당하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카게 그릇에 히나타 그릇을 올려 센스 있게 연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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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릇, 정면에서 볼 때 예쁘게 담기
맛차를 마시는 사발을 ‘맛차차완(抹茶茶碗)’, ‘맛차완(抹茶碗)’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다도 문화에서는 차를 마시기 전, 그릇의 문양을 조용히 들여다보며 감상하는 ‘완상’의 시간을 갖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발을 사용해 입을 댄 부분을 천으로 훑어가며 차를 마시는 방법도 있는데, 이 때에는 다음 사람에게 그릇의 정면을 볼 수 있도록 해서 그릇을 전하는 예절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의 영향일까요? 일본에서는 그릇에 음식을 담을 때, 정면을 의식해서 담는 문화가 있습니다. 정면을 판별하는 방법은 그릇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지만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을 알아두고 예쁘게 그릇에 담아내봅시다.
구상적인(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그림이 그려진 그릇의 경우
비교적 정면을 판단하기는 쉽지만, 버드나무를 풀밭으로 착각해서 거꾸로 놓을 수 있으니 주의!
추상적인 그림이 그려진 그릇의 경우
그림의 중심이 아래쪽에 오도록 하는 것이 안정감 있습니다. 삼각형의 경우 밑변이 아래쪽으로 오도록~
잎사귀 모양, 물고기 모양 그릇
잎의 끝부분과 물고기의 머리쪽이 왼쪽에 오도록, 나뭇가지에 붙는 부분과 꼬리쪽이 오른쪽으로 오도록 하면 좋습니다.
손잡이나 접힌 부분이 있는 그릇
일본의 그릇과 도구는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합니다. 손잡이나 접힌 부분이 오른쪽으로 오도록 합시다.
마감한 부분이 있는 그릇
두 부분이 한 데 모여 마감된 접합 부분인 ‘토지메(綴じ目)’가 있는 그릇은 그릇의 모양에 따라 토지메의 방향을 정합니다. ‘마루마에가쿠무코우(丸前角向こう)’라는 규칙을 따르는데요. ‘둥근(丸) 그릇은 토지메가 앞(前)으로 오도록, 각진(角) 그릇은 토지메가 반대쪽(向こう)으로 가도록’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무결이 있는 그릇
나무결이 손님이 보았을 때 수평이 되도록 합니다. 나이테의 중심이 손님 쪽으로 가도록, 결과 결 사이의 폭이 넓은 쪽이 앞쪽, 좁은 쪽이 반대쪽으로 가도록 합니다.
바닥에 제작자의 이름이 있는 그릇
도장의 원리처럼 제작자의 이름을 보고 방향을 정할 수도 있지만, 항상 그렇게 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을 알아두고 방향을 정합시다.
*참고: 2018년 6월 4일 暮らしの歳時記 <和食器を楽しむ> http://www.i-nekko.jp/kurashi/2018-060413.html
사라(皿), 우츠와(器), 완(椀), 차완(茶碗)
사라(皿)는 접시를 말하고, 우츠와(器)는 그릇을 말합니다. ‘器’라는 한자는 ‘식기(食器; 쇽키)’, ‘용기(容器; 요우키)’와 같은 단어에도 들어 있는 한자입니다. 일본어에서는 ‘皿に載せる(접시에 올리다)’, ‘器に盛る・器に入れる(그릇에 담다)’와 같이 동사를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완(椀)은 밥이나 국을 담는 그릇을 말합니다. 밥그릇을 ‘메시완(飯碗)’ 또는 ‘고항차완(ご飯茶碗)’, 국그릇을 ‘시루완(汁椀)’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차완(茶碗)’은 원래 다도에서 사용하는 찻사발을 말했지만, 최근에는 도자기제의 그릇을 폭넓게 말하기도 합니다. 맛차가 아닌 일반 물컵, 차컵은 ‘유노미차완(湯吞み茶碗)’, 즉 ‘뜨거운 물을 마시는 차완’이라는 표현으로 구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맛차의 경우 ‘맛차차완’).
사라(皿)의 크기
일본의 반찬 그릇 중에는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올 만한, 간장 종지 같이 작고 앙증맞은 사이즈의 접시도 있죠. 이러한 그릇은 작다는 의미의 ‘豆(마메; 콩)’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마메자라’라고 합니다. 그릇의 대략적인 크기를 알아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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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메자라(豆皿): 약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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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자라(小皿): 약 12~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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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라(中皿): 약 18~2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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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자라(大皿): 약 24cm 이상
하레노우츠와(ハレの器)
일본에서 그릇을 고를 땐 일상적으로 사용할 그릇인지, 특별한 날 사용할 그릇인지에 따라 고르기도 합니다. 명절, 관혼상제 등 특별한 날인 ‘하레노히(ハレの日)’에 사용하는 그릇을 ‘하레노우츠와(ハレの器)’라고 합니다. 특별한 날에 사용하는 만큼, 색상이나 디자인 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릇과 구별된다는 점을 알고 그릇을 구경해보면 좋겠습니다.
하레노우츠와는 하레노히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흰색을 사용하거나, 행운과 복을 상징하는 ‘엔기모노(縁起物)’의 형태나 문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후지산, 마네키네코, 다루마, 송죽매, 타이(鯛; 도미. ‘경사롭다’는 뜻의 ‘메데타이(めでたい)’와 발음이 겹침) 등이 대표적입니다.
도기와 자기
도자기를 가리키는 일본어 표현은 ‘토우지키(陶磁器)’, ‘야키모노(焼き物)’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도기(陶器; 토우키)’와 ‘자기(磁器; 지키)’를 구분해서 인식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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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陶器; 토우키): 점토를 주재료로 1100~1300도 정도로 구워냄. ‘흙그릇’이라는 의미의 ‘츠치모노(土物)’라고도 부름. 자기에 비해서 부드럽고 흡수성이 있음. 열전도율이 낮음(쉽게 뜨거워지지 않고 쉽게 차가워지지 않음). 빛을 통과시키지 않음. 자기보다 무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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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磁器; 지키): 암석인 도석(陶石)을 분쇄한 석분(石粉)을 원료로 1300도 정도로 구워냄. ‘돌그릇’이라는 의미의 ‘이시모노(石物)’라고도 부름. 도기에 비해 단단하며 열전도율이 높음(뜨거워지기 쉽고 차가워지기 쉬움). 빛을 통과시킴.
그릇을 손에 들고 사용하는 일본 식생활로 인해 감촉을 남다르게 중시하는 있어, ‘흙’이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손에 드는 일이 많은 ‘차완’의 경우는 특히 ‘도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참고: 違いがわかる辞典 <陶器と磁器> https://chigai-allguide.com/%E9%99%B6%E5%99%A8%E3%81%A8%E7%A3%81%E5%99%A8/
OO야키(OO焼):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 산지
도자기 그릇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일본. ‘OO야키(OO焼)’라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됩니다. 도자기가 제작된 지역, 산지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비젠야키(備前焼)’라고 하면, 오카야마현의 비젠시(備前市)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말합니다. 초벌구이를 하지 않고 단번에 구워낸 그릇으로 유약을 바르지 않았지만 물을 넣어 사용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적갈색, 흑갈색을 띕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 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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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젠야키(備前焼): 오카야마현의 비젠시(備前市). ‘인베야키(伊部焼)’라고도 함. ‘도기’가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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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타야키(有田焼): 사가현의 아리타(有田)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나가사키현, 사가현. ‘이마리야키(伊万里焼)’라고도 함. ‘자기’가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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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츠야키(唐津焼): 현재의 사가현 동부, 나가사키 북부. 차완이 특히 유명. ‘도기’가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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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타니야키(九谷焼): 현재의 이시카와현 남부의 가나자와시 등. 자주(紫)・녹(緑)・황(黄)・감청(紺青)・적(赤)의 다섯 가지 색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 ‘자기’가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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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라키야키(信楽焼): 시가현 코우카시(甲賀市)의 시가라키(信楽). 현관 앞 등에 장식하는 너구리(タヌキの置物; 타누키노오키모노)의 발상지로 유명. ‘도기’가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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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키(荻焼): 야마구치현 하기시(萩市). 차완이 유명. ‘도기’가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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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요미즈야키(清水焼): 교토 키요미즈데라(清水寺; 청수사) 참도(参道) 부근의 요에서 만들어진 도자기.
야키시메(焼き締め), 킨츠기(金継ぎ)
야키시메(焼き締め)
유약을 바르지 안혹 구운 도자기를 ‘야키시메(焼き締め)’ 또는 ‘시메야키(締焼き)’라고 합니다. ‘비젠야키’가 야키시메 도자기로 유명합니다. 표면이 다공질이라 맥주, 차, 술 등을 맛있게 마실 수 있다고 각광받고 있습니다. 공기의 드나듦이 좋아 ‘화분(花鉢; 하나바치)’, ‘꽃병(花瓶; 카빙)’으로도 좋습니다. 쓰면 쓸수록 광택이 좋아지고 촉감도 부드러워진다고 하네요.
킨츠기(金継ぎ)
금이 가거나 이가 나가거나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땜하는 ‘킨츠기(金継ぎ)’. 일본의 멋스러운 문화로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우루시(漆; 옻)’로 깨진 부분을 접합한 뒤, 금가루를 사용해 장식하는 개념입니다. 우루시(옻)를 사용해 그릇을 복원한 흔적은 훨씬 이전인 조몬시대(일본의 선사시대)의 토기에서도 발견되지만, 킨츠기가 본격화된 것은 무로마치 시대(1336~1573년). 옻을 사용한 공예기술과 차문화가 발달하면서였습니다.
다양한 기법으로 소중한 그릇을 복원하는 긴츠기. 관심이 있다면 ‘긴츠기도서관’이 도움이 될 듯합니다.
*긴츠기 도서관(金継ぎ図書館) https://hatoya-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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