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가을 일본어로 일본어를 공부하고 싶다. 그런 분들에게는 하이쿠에서 각 계절을 나타내는 일종의 시어인 ‘기고(季語)’, 즉 ‘계절어’로 일본어를 공부해보시길 추천합니다. 파란 하늘, 조용한 바다, 아름다운 달의 모습을 단어 하나로 아름답게 표현해내기 때문인데요. 편지에서도 적절히 활용하면 멋스럽습니다. 글로 그린 풍경 스케치라고 할까요?
이번 기사에서는 예쁜 가을 일본어를 가을 내내 쓸 수 있는 것, 각 시기별 풍경을 담아낸 것(초가을, 가을 중반, 늦가을)으로 나누어 소개드립니다. 각 시기별로 나타나는 자연 현상을 담아낸 깊고도 절묘한 일본어로 일본어로 공부와 함께 문화적 소양까지 챙겨보세요.
한자 읽는 법이 독특한 경우가 많아 일본 이름을 지을 때 참고해도 좋습니다.
<내용 소개>
예쁜 가을 일본어 1. 가을 전반
1.秋高し / あきたかし / 아키타카시 [뜻: 높은 가을 하늘]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파란 가을 하늘. 유난히 ‘높게’ 느껴져서 ‘高し(타카시)’.
참고로, 하이쿠에서는 5/7/5조가 기본이므로, 5자나 7자 계절어가 많습니다. ‘높은 가을 하늘’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더 압축적으로 같은 의미를 표현한 것이 문학적입니다.
하이쿠의 기본 지식을 먼저 살펴보고 싶다면 <하이쿠, 일본어 초보도 즐길 수 있다> 기사를 읽어보세요.
2.秋風 / あきかぜ / 아키카제 [뜻: 가을 바람]
‘가을 바람’ 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시나요? 가을의 시작에 부는 바람은 여름의 더위가 살짝 묻어나지만, 점점 상쾌해지면서 가을의 끝에는 차가워집니다. 평범한 듯하지만 한 단어로 가을 바람의 다양한 온도를 표현할 수 있어 더 멋진 계절어입니다.
3.秋の浜 / あきのはま / 아키노하마 [뜻: 가을의 해변]
‘浜(하마)’는 ‘모래밭’, ‘해변’이라는 뜻입니다. 가을의 해변은 여름의 인파가 사라진 조용한 이미지가 특징입니다. 그 자체로 조용한 풍경을 연상시키면서, 때로는 쓸쓸한 느낌도 묻어납니다.
4. 秋の蝶 / あきのちょう / 아키노초우 [뜻: 가을의 나비]
음력 8월 8일이 지나면서 가을 나비가 날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봄, 여름의 나비에 비해 조금은 힘이 없고 연약한 모습이 특징인데요. 연약하고 쓸쓸한 느낌을 표현하는 계절어입니다.
[하이쿠 감상]
あきの蝶日の有るうちに消えうせる(아키노초우 히노아루우치니 키에우세루)
“가을의 나비 해 뜬 동안에 사라진다”
(쿠무라 쿄우타이(久村暁台), 『쿄우타이 일기(暁台日記)』에 수록된 하이쿠)
5. 月代 / つきしろ / 츠키시로 [뜻: 밝아오는 동쪽하늘]
달(츠키)이 뜨기 전 동쪽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시어입니다. 일본에서는 ‘가을’ 하면 ‘달 구경’이 연상되는데, 바로 음력 8월 15일의 달구경인 ‘십오야(十五夜)’ 전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달구경을 하려고 기다리는 이들의 눈에 들어온 ‘츠키시로’. 어둡고도 밝은 그 하늘 빛깔을 눈 감고 그려봅니다.
변형 형태로 ‘月白(つきしろ; 츠키시로)’도 쓸 수 있습니다.
6. 赤蜻蛉 / あかとんぼ / 아카톤보 [뜻: 빨간 잠자리]
‘잠자리’는 일반적으로 ‘トンボ’로 가타카나 표기가 익숙합니다. 한자로는 ‘蜻蛉’라고 표기되는데, 옛날에는 이 한자를 ‘あきつ(아키츠)’ 또는 ‘あきづ(아키즈)’라고 읽었다고 합니다. 초여름에 탈피하여 산으로 이동한 잠자리는 초가을에 성충이 되어 알을 낳기 위해 다시 평지로 날아옵니다. 새빨간 고추 잠자리를 보면 비로소 가을이 왔구나 느끼게 되는 만큼 대표적인 가을 계절어입니다.
7. 流れ星涼ながれぼし / 나가레보시 [뜻: 유성]
유성은 여름부터 겨울까지 잘 보입니다. 우주의 먼지가 대기와 충돌해 고온으로 발광하는 현상이죠. 불빛이 적은 장소에서 낙하하는 별을 감상하는 느낌을 담은 계절어입니다.
변형 형태의 계절어로는 ‘星飛ぶ(ほしとぶ; 호시토부)’, ‘별 날다’가 있습니다.
추천 기사
예쁜 가을 일본어 2. 초가을
8. 新涼 / しんりょう / 신료우 [뜻: 초가을 시원함]
가을의 초입에 느끼는 시원함을 나타내는 계절어입니다. ‘아, 이제 좀 살겠다’의 하이쿠 계절어 버전이랄까요? 살랑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 바람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9. 朝顔 / あさがお / 아사가오 [뜻: 나팔꽃]
새벽에 꽃이 피고 낮에는 꽃잎이 오므라드는 나팔꽃. 지금은 여름꽃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예전에는 초가을을 알려주는 꽃이었다고 합니다.
10. 天の川 / あまのがわ / 아마노가와 [뜻: 은하수]
한자로만 읽으면 ‘텐노가와’라고 읽고 싶지만, ‘아마노가와’라고 읽습니다. 강처럼 흐르는 별의 무리로 초가을의 게절어입니다. 은하수는 여름에 많이 보인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어느 계절에나 볼 수 있고, 일본에서는 예부터 가을을 나타내는 하이쿠 계절어로 유명합니다.
‘銀河(ぎんが; 긴가)’도 초가을을 나타내는 계절어입니다.
예쁜 가을 일본어 3. 가을 중반
11. コスモス / 코스모스
9월~10월에 피어나는 코스모스는 예부터 오늘날까지 가을이 무르익는 느낌으로 들판을 채워줍니다. 다양한 색의 꽃이 있어 마음 속으로 색을 정하고 그 이미지로 하이쿠를 한 편 지어봐도 좋겠습니다.
하이쿠에서는 ‘秋桜’라고 쓰고 ‘코스모스’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역시 가을 중반의 계절어로, 한자 뜻으로 보면 ‘가을벚꽃’이라는 뜻이 되어 더 예쁘게 느껴집니다. ‘아키자쿠라’라고 읽지 않고 ‘코스모스’라고 읽는 것, 특별하죠?
12. 葉月 / はづき / 하즈키 [뜻: 잎 떠는 달]
나뭇잎이 낙엽 져 떨어지는 달, 즉 ‘잎 떠는 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력 8월’의 별명이가도 합니다. 木の葉がもみじして落ちるから葉おち月
일본의 음력 1월~12월은 모두 예쁜 별명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和風月名(わふうげつめい; 와후우게츠메이)’, 즉 ‘화풍월명’라고 하는데요. <[일본 이름 짓기] 5월의 별명은 ‘사츠키’~ 와풍월명>에서 그 예쁜 이름들을 살펴보세요.
13. 十六夜 / いざよい / 이자요이 [뜻: 음력 8월 16일 달밤]
중추절인 ‘十五夜’는 숫자를 살려 ‘쥬고야’라고 읽지만, ‘十六夜’는 ‘쥬로쿠야’가 아니라 ‘이자요이’라고 읽는 것이 특별합니다.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한가을의 계절어입니다. 보름달에서 하루 지나 살짝 이울기 시작한 달에서 옛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애틋히 여겼습니다.
‘いざよう(이자요우)’는 고어로 ‘머뭇거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보름달보다 조금 늦게 뜨는 16일의 달이 어딘가 머뭇거리는 듯 보였나 봅니다.
예쁜 가을 일본어 4. 늦가을
14. うそ寒 / うそさむ / 우소사무 [뜻: 희미한 추위]
가을의 중턱을 넘어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슬슬 추위가 느껴집니다. 이때의 온도를 담은 늦가을의 계절어가 ‘우소사무’입니다. ‘우소’는 ‘거짓말(噓; うそ)’의 ‘우소’가 아니라 ‘희미하다’, ‘어렴풋하다’라는 뜻의 ‘우스라(薄ら; うすら)’에서 왔습니다. 하이쿠에서는 ‘うすら寒(우스라사무)’라는 계절어로 써도 됩니다.
15. 冬隣 / ふゆとなり / 후유토나리 [뜻: 겨울 곁]
가을의 이웃은 겨울. 겨울이 가까이 온 느낌을 잘 나타내는 늦가을의 계절어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 이제 겨울이 코앞이다라고 느껴질 때 사용해보세요. ‘겨울’이라는 단어로 ‘가을’을 표현하는 점이 특별한 계절어입니다.
16. 紅葉 / もみじ / 모미지 [뜻: 단풍]
새빨갛게, 샛노랗게 물들었다가 떨어지는 나뭇잎. ‘단풍’이라는 뜻의 ‘모미지’는 하이쿠에서는 늦가을을 나타내는 계절어입니다. 2024년에는 유독 단풍이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데요, 단풍을 보면 바로 겨울로 접어드는 것인지, 낙엽이 땅으로 떨어지며 겨울이 시작되는 것인지, 조금 더 깊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色葉(いろは; 이로하)’라는 예쁜 계절어도 늦가을 계절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가을을 표현한 하이쿠의 계절어 16가지의 한자, 읽는 법,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짤막짤막하게나마 공부해봤습니다. 가을이 얼마나 아름다운 계절인지, 그런 가을을 일본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고 즐기고 보내왔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면 기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