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기린, 아사히.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일본 맥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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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9

한국 맥주는 그 이해가 심히 깊거늘, 일본 맥주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즐겨야 하는 것인지? 일본 여행, 일본 생활 중에 자주 만나게 될 유명 맥주 브랜드들에 얽힌 일본 맥주 상식을 Q&A 형식으로 소상히 전해드립니다.

<내용 구성>

Q1. 삿포로 쿠로라벨, ‘쿠로(黒)’면 흑맥주인가?

Q2. 기린 이치방시보리, ‘시보리’가 뭐야?

Q3. 아사히 슈퍼드라이, ‘드라이’란?

Q4. ‘발포주’는 맥주인가?

Q1. 삿포로 쿠로라벨? ‘쿠로(黒)’면 흑맥주인가?

일본 맥주 공부를 시작하려고 보면, ‘일본 최초의 맥주’가 궁금해지죠. 일본인이 만든 최초의 양조소는 1876년 홋카이도 삿포로의 ‘개척사맥주양조소(開拓使麦酒醸造所)’로 ‘삿포로 맥주’의 전신입니다. 

1865년 열일곱의 나이로 요코하마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한 청년이 1873년 독일로 가서 베를린양조회사 퓌르스텐발데(Fürstenwalde)공장에서 2년 2개월간 혹독한 맥주 제조 수업을 받고 자랑스러운 ‘수업 증서’를 들고 1875년에 귀국합니다. 당시 27세의 나카가와 세베에(中川清兵衛)는 일본 최초의 국산 맥주 양조기사로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요. 1877년 그의 손에서 ‘삿포로 맥주(サッポロビール)’가 탄생합니다. 도쿄에 공장을 세우고 이후 홋카이도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나카가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얼음’이 맥주 제조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좋은 얼음이 가득한 홋카이도에서 처음부터 맥주를 만들어기로 결의했다고 합니다. 당시 맥주 공장을 세우는 데는 지금 돈으로 1억 엔(한화 10억 원) 정도가 들었다고 하네요(*). 

*삿포로 맥주 홈페이지 https://www.sapporobeer.jp/company/history/1876.html

삿포로하면 ‘빨간 별’이 생각나시는 분들 계실까요? 일본인들에게 ‘아카보시(赤星)’라고 알려져 있는 이 별은 일본 최초의 맥주 삿포로 맥주 발매 초기부터 라벨에 사용된 의미 있는 심볼입니다. 삿포로의 전신 ‘개척사’의 심볼로 북극성을 상징한다네요. 일본 최초의 맥주 앞에는 ‘冷製(냉제)’라는 단어가 붙었는데요, 독일의 양조 방식으로 저온에서 발효・숙성된 맥주였기에 그런 표현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고급 니혼슈가 1.8리터들이에 4전 5린이었는데, 삿포로 맥주는 댓병(大びん;오오빙) 한 병에 16전. 얼마나 귀한 술이었는지 감이 오는 대목입니다(*). 

*삿포로 맥주 홈페이지 https://www.sapporobeer.jp/company/history/1877.html

삿포로나마쿠로라벨(サッポロ生黒ラベル)

편의점, 마트의 맥주 코너에 가면 요즘은 ‘삿포로나마쿠로라벨’이 눈에 자주 띄는데요. ‘쿠로라벨’이 붙기 전에 먼저 ‘삿포로빈나마(サッポロびん生)’라는 병맥주가 1977년에 발매되어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OB’와 ‘하이트’ 중에서 정해놓고 마셨듯, 일본 애주가들 사이에서 ‘빈나마당(びん生党)’이라고 자칭하기 시작했다고. ‘쌩병파’ 정도 되는 표현인데요. 이 ‘빈나마당’들 중 당시 라벨이 검은색이었던 것에서 ‘쿠로라벨(黒ラベル)’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생겨났고 이 애칭이 이름처럼 불리기에 이르르자, 삿포로 맥주에서 1989년 같은 맥주를 ‘삿포로나마쿠로라벨(サッポロ生黒ラベル)’이라고 이름짓게 되었습니다. 팬들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이름인 셈이죠. ‘쿠로(黒)’라서 잘 모르면 ‘흑맥주인가?’ 싶은데, ‘라벨 색이 검정이라 쿠로라고 불린 것이온데, 왜 쿠로라고 물으신다면…’이 정답이었던 것입니다(*).

* 삿포로 맥주 홈페이지 https://www.sapporobeer.jp/company/history/roots.html

Q2. 기린 이치방시보리, ‘시보리’가 뭐야?

갈길이 바쁜 만큼, 금빛이 2프로 감도는 듯한, 빨간 별만큼 유명한 기린을 만나러 가볼까요? 삿포로 맥주의 전신인 ‘개척사’가 세워진 지 약 10년 뒤인 1885년. 기린 맥주의 전신인 ‘저팬 브루어리 컴퍼니(ジャパン・ブルワリー・カンパニー, JBC)’가 요코하마에 설립됩니다. 삿포로 맥주가 독일 양조소 유학파 일본인 양조기사의 손에서 일본 첫 맥주를 만들었다면, 기린은 ‘양조 기사 자격증을 갖춘 독일인’을 고용, ‘독일의 최신 양조 설비’로, ‘홉 등의 원료를 독일에서 조달’ 하는 승부수를 띄우며 시작부터 ‘본격 독일풍 맥주’를 지향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888년 ‘기린 맥주(キリンビール)’가 탄생합니다. 

발매 당시부터 기린 맥주의 로고에는 ‘LAGER BEER’가 뚜렷하게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1888년 첫 라벨이 검은색이었던 것이 1889년 붉은색에 기린이 더 커지고 분명해진 라벨로 한 차례 변한 것을 제외하고 120년 동안 라벨 디자인이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1988년 첫 맥주가 태어난 지 100년 만에 상품명이 ‘기린라거맥주(キリンラガービール)’로 바뀌었습니다. 한 번 정했다 하면 100년을 유지하는 것이 기린에서는 기본인 듯~ 기린하면 이상하게도 ‘병맥주(瓶ビル; 빈비루)’가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처음에는 코르크 마개 병을 사용했다가 1912년부터 현재의 금속제 병뚜껑(王冠栓; 오칸센)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린 맥주 홈페이지 https://www.kirin.co.jp/company/history/jb/j2.html

기린이치방시보리나마비루(キリン一番搾り生ビール)

‘이치방(一番)’은 ‘제일’, ‘가장’, ‘1번’의 의미니까 최고라는 뜻인 것 같고, ‘搾り’라는 어려운 한자는 ‘시보리’라고 읽는다고는 하는데 무슨 뜻일까? 통칭 ‘기린이치방’이라고 불리는 ‘기린이치방시보리나마비루’는 1990년 발매되었습니다. 이 맥주의 탄생 배경에는 1980년대 후반에 발발한 일본 맥주 3사의 ‘드라이 전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린은 이 전쟁에서 아사히에게 패배한 후 충격을 만회하기 위해 ‘회사의 운명을 건 대형 간판 상품(会社の命運をかけた大型定番商品)’을 개발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기린이치방시보리나마비루’라는 신상품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기린은 일본인들이 ‘고급스러운 고쿠(コク)를 가진, 노도고시(のどごし), 즉 목넘김이 상쾌하고, 뒷맛이 산뜻한 맥주’를 좋아한다고 판단, 실험을 거듭해 ‘이치방시보리무기시루(一番搾り麦汁)’, 즉 처음으로 걸러진 맥아즙만을 사용해 맥주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치방시보리’는 첫 번째 걸러진 맥아즙과 두 번째 걸러진 맥아즙을 섞어서 만들었던 기존 기린 맥주에 비해 타닌 성분이 적고 산뜻한 맛이 특징! 그러나 한 가지 넘어야 할 과제가 있었으니 바로 ‘가격’이었습니다.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니방시보리’를 버리고 ‘이치방시보리’만 사용하기로 결정한 만큼, 맥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 당연지사. 프리미엄 라인으로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고객에게 좋은 것을 싸게 제공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책무”라고, 기린 사장님이 통상 가격대로 상품을 내놓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1990년 ‘이치방시보리’라는 제품의 특징을 전면에 내세운 명칭과 디자인으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대히트였습니다. 안정된 성장세를 바탕으로 발매 20년을 맞이한 2009년에는 쌀 등의 부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맥아 100%를 사용하기로 결정, 라벨의 <이치방시보리> 위에 <맥아 100%>라는 문구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05년에 출시된 기린의 <노도고시나마(のどごし<生>)>의 ‘노도고시(목넘김)’은 앞서 소개한 일본인이 선호하는 맥주맛에서 본 단어네요! 

*기린 뮤지엄 오브 히스토리 ‘상품 브랜드의 역사’ <기린이치방시보리나마비루> https://www.kirin.co.jp/entertainment/museum/brand/06.html   

Q3. 아사히 슈퍼드라이, ‘드라이’란?

일본의 맥주 팬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본의 맥주 전쟁. ‘드라이 전쟁(ドライ戦争)’을 아시나요? 먼저 아사히 맥주의 역사도 훑어봐야겠죠? 기린보다 4년 늦은 1889년 아사히 맥주의 전신인 ‘오사카맥주회사(大阪麦酒会社)’가 설립됩니다. 1892년 첫 아사히 맥주가 발매, 병맥주는 일본 최초로, 1900년에 ‘아사히 나마 비루’라는 이름으로 발매했습니다(*).

*아사히 그룹 홈페이지 https://www.asahigroup-holdings.com/company/history/

아사히 슈퍼드라이(アサヒ スーパードライ)

앞서 이야기했던 1980년대 후반의 ‘드라이 전쟁’의 승자. 아사히의 ‘슈퍼드라이(スーパードライ)’는 1987년 3월에 발매되었습니다. 기존의 강자 기린 맥주가 4.5도였던 데 비해, 아사히 슈퍼드라이는 알콜도수를 5도로 높였다는 것이 특징. 그러면서 기존의 맥주와 다르게 ‘드라이’한 맛을 내게 되었던 것인데요. 슈퍼드라이가 출시되기 한 해 전인 1986년에 출시된 <아사히나마비루(アサヒ生ビール)>(일명 ‘코쿠키레’ 비루)의 광고문구에 이미 ‘드라이 맥주’가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コクがあるのにキレがある(코쿠가 있는데 키레가 있다)”

커피맛, 와인맛도 그렇지만 맥주맛도 공부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임을 알려준 아사히의 광고 문구. 일본 맥주 맛을 논할 때 알아두면 좋을 ‘코쿠(コク)’와 ‘키레(キレ)’란 무슨 뜻일까요?

  • 코쿠(コク): 다섯 가지 맛(단맛, 짠맛, 신맛, 쓴맛, 기름진 맛)이 밸런스 좋게 들어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농후한 맛

  • 키레(キレ): 뒷맛이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가를 측정한 맛. 본래 니혼슈의 주조 기술자들이 사용하던 말로, 뒷맛이 깔끔하게 사라지면 ‘키레가 있다(キレがある)’, 반대로 뒷맛이 오래 남는 듯하면 ‘키레가 나쁘다(キレが悪い)’라고 표현한다고 함

알콜 도수를 높이면서 농후하고 뒷맛까지 깔끔한 ‘아사히나마비루’는 역시나 대인기. 아사히에서는 이 맛을 그대로 유지하며 이듬해인 1987년 명칭을 ‘아사히 슈퍼드라이’로 바꾸어 ‘지역한정’으로 판매를 시작합니다. ‘세계 최초’, ‘카라쿠치 맥주(辛口ビール)’ 등 그 독특한 맥주 맛으로 폭발적인 판매고를 올리기 시작한 아사히 슈퍼드라이. 맥주 역사상 선배님들인 삿포로와 기린이 가만 있을 리 없겠죠? 1988년 두 회사도 ‘기린나마비루드라이’, ‘삿포로드라이’를 내놓았지만, ‘원조드라이’의 아성을 깨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뿐이면 다행인 것을! 두 회사의 명칭이나 라벨이 ‘아사히 슈퍼드라이’와 너무 비슷했던 까닭에 아사히 측에서 양사에 항의문과 내용증명을 발송, 다른 회사들은 급기야 명칭까지 바꾸어야 했습니다. 1988년 신문에는 연일 ‘드라이 전쟁’을 보도했고, 이는 다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드라이’라는 용어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아사히는 1988년 6월 27일 각 신문에 자랑스럽게 ‘드라이 전쟁 승리 선언’ 광고문을 게재합니다. “この味が、ビールの流れを変えた。(이 맛이, 맥주의 흐름을 바꿨다)”라고(*).

*아사히 맥주 홈페이지 2004년 9월 14일 <アサヒスーパーレポート> p. 15 https://www.asahibeer.co.jp/ir/pdf/busrep/2004c.pdf

1988년 드라이 전쟁을 종식한 아사히 슈퍼 드라이는 22년 연속 1억 케이스 돌파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일본 맥주의 강자로 자리매김합니다(*). 

*2010년 12월 6일 MSN産経ニュース, <アサヒ「スーパードライ」、22年連続年間1億ケース突破>

Q4. 발포주(発泡酒)는 맥주인가?

‘아사히 슈퍼드라이’(1987년), ‘기린이치방시보리(1990년)’ 출시 이후 열린 새로운 시장 ‘발포주’. 1994년 산토리(サントリー)가 발매한 ‘홉스(ホップス)’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맥주 강자들은 ‘발포주’를 만들게 되었죠. 발포주란 맥주의 원료 중 맥아의 비율을 줄여, 주세법(酒税法)상 ‘맥주’가 아닌 ‘발포주’로 분류되어 세율을 적게 적용받는다고 합니다. 알콜도수도 3~8%인, ‘멀쩡한’ 술입니다. 맛과 향은 맥주와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3분의 2 수준으로, 빠르게 판매고를 올리기 시작했는데요. 기린이 1998년 ‘기린 탄레 나마(麒麟 淡麗<生>)’를 출시하면서 맥주 시장의 15%까지 발포주 매출을 견인했습니다(*).

*기린 뮤지엄 오브 히스토리 ‘술・음료의 역사’ <일본 맥주의 역사> https://www.kirin.co.jp/entertainment/museum/history/column/bd100_1994.html 

아사히의 경우 발포주 계열의 맥주가 히트상품 슈퍼드라이의 매출을 오히려 잠식할 것을 우려해 뒤늦게 출시했지만, 발포주 ‘혼나마(本生)’가 출시된 뒤 슈퍼드라이의 매출이 10% 이상 감소했다고 합니다. 결국 혼나마도 선전해주어 2001년에는 맥주와 발포주를 합산한 맥주류 판매에서 기린의 아성을 제치고 1위에 등극하게 됩니다(*). 

*2008년 10월 <アサヒビールグループの概要と事業方針 (PDF)- アサヒビール> p.5 https://www.asahibeer.co.jp/ir/event/pdf/presentation/2008_in_factory.pdf   

이제 일본 맥주를 고를 때 자신의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으시겠죠? 마지막으로 잠깐 퀴즈! 맥주 안주로 마침맞을 것 같은 이 과자의 이름은?

감의 씨를 닮았다고 해서 ‘카키노타네(柿の種)’라고 부르는 쌀로 만든 과자입니다. 땅콩과 함께 들어 있는 것은 ‘카키노타네+피넛(ピーナッツ)’라는 이름의 ‘카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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