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검심(るろうに剣心)>이 다시 인기를 모으면서 일본의 역사 시대 중 하나인 메이지시대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막말(막부 말기)’, ‘존왕’, ‘양이’, ‘지사’, ‘신선조’... 에도시대~메이지시대의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메이지시대의 시작을 살짝 들여다볼까요?
<내용 소개>
◆[메이지시대로 가는 키워드] 막말(幕末), 흑선 내항(黒船来航)
◆[메이지시대로 가는 키워드] 존왕(尊王), 양이(攘夷)
◆[메이지시대로 가는 키워드] 지사(志士),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유신지사(維新志士)
◆[메이지시대로 가는 키워드] 신선조(新選組・新撰組), 히토키리(人斬り)
[메이지시대로 가는 키워드] 막말(幕末), 흑선 내항(黒船来航)
막부 말기를 줄여서 말하는 ‘막말(幕末)’, 일본어로 ‘바쿠마츠’는, 도쿠가와 막부가 통치한 ‘에도 시대(江戸時代)’의 말기를 가리킵니다.
언제부터 ‘막말’이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정의는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페리 제독이 이끄는 아메리카 함대가 우라가(浦賀; 현재의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 내항해 개국을 요구한 ‘黒船来航(쿠로후네라이코; 흑선 내항)’을 ‘막말’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1853년의 일입니다.
흑선이 일본에 온 까닭은?
페리 제독의 함대가 일본에 오기까지 세계사적인 사건들이 앞서 일어났습니다. 1840~1842년 청나라에서 일어난 ‘아편전쟁’(여기서 청나라는 영국에 패해 불평등조약을 맺습니다), 이어서 1853~1856년 러시아 영토였던 크림반도에서 일어난 ‘크림 전쟁’(오스만제국, 영국, 프랑스 동맹군이 러시아를 격파, 영국과 프랑스가 세력을 얻음). 이 두 전쟁에서 아시아의 제국들은 힘을 잃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이권을 얻기 위한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개척민이 서해안까지 도달하면서 미개척지가 소멸해가던 시기. 이런 시기에 아직까지 ‘쇄국’ 정책을 펴고 있던 일본으로 미국 함대가 ‘개국’을 요청하기 위해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당시 막부는 이에 잘 대비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요청대로 일미화친조약(日米和親条約)을 맺으며 힘없이 개국을 하게 됩니다(외국 배들이 요구할 경우 물과 식량, 연료 등을 공급하는 등의 조건).
에도시대에는 무사 계급이 서민보다 더 높은 신분이었는데, 이들이 외국 세력에 대해 무력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많은 이들 사이에서 위기의식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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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시대로 가는 키워드] 존왕(尊王), 양이(攘夷)
존왕(尊王): 천황을 공경한다
존왕(尊王) 또는 존황(尊皇)이라고 쓰고 ‘손노우’라고 발음하는 이 표현은 ‘천황을 공경하다’라는 뜻입니다. 에도시대에는 무사부터 서민까지 중국의 ‘유교(유학)’ 사상을 공부했고, 일본의 역사서에는 일본에서는 유교의 ‘왕(王)’이 곧 ‘천황(天皇)’을 의미한다고 밝힌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두 개념은 모두 ‘천황’을 공경하는 사상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쇼군(将軍), 즉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도 천황에게 임명받은 것이며, 천황을 공경하는 데서 천황에게서 임명받은 쇼군의 권위가 발생한다고 이해되었습니다. 이러한 ‘존왕’ 사상은 에도시대 말기가 아닌, 에도시대 전반에 걸쳐 무사 계급이 공유하고 있던 사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에도시대에 ‘흑선 내항’으로 막부에 대한 신뢰감이 저하되면서 ‘천황 아래로 집결하자’는 ‘존왕’의 사상이 더욱 강해지게 된 것입니다.
양이(攘夷): 서양 열강의 위협을 떨쳐버리자
양이(攘夷), 일본어로 ‘조우이’도 중국의 유교에서 유래한 사상입니다. ‘야만스러운 이민족 물리치자’는 것으로, 막말의 일본에서는 ‘서양 열강의 위협을 떨쳐버리자’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824년 현재의 기타이바라키시에 영국인이 상륙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1825년에 막부에서 ‘이국선 추방령(異国船打払令)’을 선포했는데, 이때 유학자인 아이자와 세이시사이(会沢正志斎)가 ‘외국 침략에서 일본을 지키려면 막부를 필두로 일본인이 천황의 아래 일치 단결해 이국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의견을 내세웠고, 이 말을 통해 서로 별개로 존재했던 ‘존왕’과 ‘양이’의 두 생각이 하나로 연결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이후 ‘존왕양이(尊王攘夷)’ 사상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메이지시대로 가는 키워드] 막말의 동란(動乱)
‘존왕양이’는 소수의 사람들만 갖고 있던 생각이 아닌, 당시 일본인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던 생각이었는데, ‘흑선 내항’ 사건이 일어나고, 막부가 개국 정책을 펴게 되면서 막부를 비판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슬로건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흑선이 내항한 지 5년 후인 1858년, 막부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일미수호통상조약(日米修好通商条約)을 체결합니다. 단순히 외국 배들에게 항구를 개방하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역을 할 것을 약속하는 조약이었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시 청나라에서 영국, 프랑스가 제2아편전쟁을 일으킨 상황에서 일본과의 조약 내용에 아편 수입 금지 조항을 넣어 조약을 체결, 영국, 프랑스에게 일본에 대한 이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에도의 막부에서는 교토의 조정에 허가를 구해 ‘천황도 허가했다’는 구실을 만들어보려 하지만 조정에서는 이를 허가하지 않았고, 막부는 조정과의 교섭에 실패한 채 막부 최고 관직인 ‘다이로(大老)’였던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가 결단을 내려 미국과 통상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존왕’에도 ‘양이’에도 어긋난 이 조약 체결로 비난의 여론이 거세게 일었지만, 이이 나오스케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막부를 비판하는 이들을 처벌합니다. 이 사건을 안정 시대의 큰 옥사라는 뜻으로 ‘안정의 대옥(安政の大獄; 안세노 다이고쿠)’라고 부릅니다.
이 사건으로 반감을 산 이이 나오스케는 결국 1860년에 암살을 당하게 되고 이로서 막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막말의 동란(動乱; 도우란), 혼란이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개국, 존왕양이 안의 두 입장
막부 측도 서양 세력을 추종해 적극적으로 개국을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과 함께 ‘존왕양이’를 주장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크게 두 가지로 입장이 갈렸습니다. ‘막부가 외국과 체결한 조약을 무시하고, 즉각 이국을 추방한다’는 입장, ‘열강과 지금 바로 싸워봐야 승산은 없다. 그러니 먼저 개국한 뒤 무역을 통해 일본의 국력을 쌓아 열강의 위협에서 일본을 보호하자’는 입장. 학문적으로는 전자를 ‘소양이파(小攘夷派)’, 후자를 ‘대양이파(大攘夷派)’로 부르며 이 ‘대양이파’의 생각이 메이지유신 이후 메이지 정부로 계승됩니다.
같은 ‘존왕양이’를 주장하지만 ‘막부를 지지하는 파’와 ‘막부에 반대하는 파’가 서로 격렬히 대립했던 상황.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면 막말의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1867년, 메이지 천황이 14세로 황위에 오르고, 같은 해에 조정에서는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에 막부를 타도하라는 밀칙을 내리게 되는데, 같은 날 에도 막부에서는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납하게 됩니다. 막부의 권한이 소멸되면서 막부를 타도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막부를 지지하던 세력(구 막부군)과 사쓰마번, 조슈번, 토사번(土佐藩) 등의 신정부군이 1868년~1869년 약 16개월에 걸쳐 ‘무진전쟁(戊辰戦争; 보신센소)’라고 불리는 내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신정부군이 승리하면서 메이지 정부는 일본을 통치하는 합법적인 정부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게 됩니다.
*참고: 2021년 2월 14일 warakuweb(小学館) <幕末って何? 2021年大河ドラマ『青天を衝け』の背景をQ&Aでサクッと解説> https://intojapanwaraku.com/culture/144192/
[메이지시대로 가는 키워드] 지사(志士),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유신지사(維新志士)
에도시대 후기, 막말에 활동한 재야의 인물을 ‘지사(志士 ; 시시)’라고 합니다. 『논어-위령공(衛霊公) 제십오(第十五)』에 나오는 ‘지사인인(志士仁人)’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자신을 죽임으로써 인을 이루는(有殺身以成仁)’, 즉 ‘살신성인’ 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막말에 ‘존왕양이’ 사상을 가졌던 인물들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메이지시대 초기에 사쓰마번, 조슈번, 토사번, 비젠번(肥前藩)의 4개 번이 중심이 된 막부 타도 운동 및 근대화 개혁인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메이지이신)’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시기에 통일 정권 확립을 위해 힘쓴 이들, 자유민권운동 활동가, 메이지 사회주의자들 또한 ‘지사(志士)’로 불리게 됩니다. 한국에서 자주 사용되는 ‘유신지사(維新志士; 이신시시)’라는 표현은 ‘메이지유신 시기의 지사’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메이지시대로 가는 키워드] 신선조(新選組・新撰組), 히토키리(人斬り)
막말, 천황의 조정이 있던 교토에서 치안을 유지하며 존왕파 지사들을 탄압하던 막부의 조직을 ‘신선조(新選組・新撰組; 신센구미)’라고 합니다. 즉, 에도의 막부가 고용해 교토로 파견한 이들로, 초닌(町人)・농민 출신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신선조에 소속된 이러한 이들을 ‘낭사(浪士; 로우시)’라고도 부릅니다.
반면, 같은 시기에 교토에서 ‘존왕양이’의 뜻을 품은 지사로 활약한 이들 중 대표적인 4인을 ‘人斬り(히토키리; 사람을 베는 이)’, 즉 영어의 ‘킬러(killer)’에 해당하는 표현을 사용해 ‘幕末の四大人斬り(바쿠마츠노 욘다이 히토키리; 막말의 4대 킬러)’라고 불렀습니다. 그중 한 명인 가와카미 겐사이(河上彦斎)가 바로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 히무라 켄신의 모델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존왕양이파인 가와카미 겐사이가 막부 타도 이후에 죽게 된 이유는?
가와카미 겐사이는 에도 막부가 막을 내린 뒤에도 계속해서 ‘존왕양이’ 사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가와카미의 ‘양이’는 모든 외국 세력을 무력으로 철퇴하려는 배격 사상으로, ‘천황’을 정치의 중심으로 삼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신정부를 수립해나가던 이들의 ‘존왕’양이와는 방향성이 달랐습니다.
유신 10걸(維新の十傑; 이신노 짓케츠. 메이지유신의 10대 영웅) 중 한 사람인 오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는 가와카미를 경계했고, 막부 토벌 세력의 핵심 인물로 한때 가와카미가 호위하기도 했던 산조 사네토미(三条実美)는 ‘겐사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베개를 편히 베고 잘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적극적으로 개국 정책을 펴나가던 신정부의 입장에서 불편한 존재가 된 겐사이는 결국 체포를 당하게 되고, 암살 의혹 등을 이유로 에도로 송치된 이후 니혼바시에서 참수형에 처해집니다.
*참고: 2020년 2월 7일 warakuweb(小学館) <河上彦斎とは?『るろうに剣心』主人公モデルとなった幕末の四大人斬り、愛刀や流儀、性格など紹介> https://intojapanwaraku.com/culture/75795/
정리
<바람의 검심>과 함께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NHK 대하드라마 <청천을 찔러라(青天を衝け)>의 배경이 되는 에도시대 말기(막말)~메이지시대 초기. ‘존왕양이’가 일본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갖고 있던 사상이었던 시대에 ‘지사’라는 이름으로 함께 싸우고도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기도 한 만큼, 시대적 배경을 자세히 이해해두면 콘텐츠를 즐기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어려운 역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그 배경을 이해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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