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름과 역사: 일본 성(성씨)이 생겨난 배경과 제정된 법령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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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4

일본 이름에 관심을 갖고, 예쁜 일본어 이름, 귀여운 일본어 닉네임을 짓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일본 이름을 일본어 그대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싶기도 하고, 일본 역사 속 이름은 읽는 법과 개념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죠. 그런 분들은 일본 이름의 역사를 한번 살펴두시면 좋을 듯합니다. 일본의 이름은 고대의 씨성 제도에서 시작되어 헤이안시대에는 공가, 무사들에게 ‘묘지(名字)’, 즉 성이 내려졌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일본 이름이 생겨난 역사에 대해 자세히 해설하고, 국민 모두가 ‘묘지(名字)’를 사용하게 된 시기와 배경, 제정된 법령 등을 소개합니다. 일본 이름에 대한 지식을 탄탄히 다져보세요.

<내용 소개>

◆일본인의 이름은 언제 생겼을까?: 고대의 일본 이름

◆에도 시대의 일본 이름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 이름의 변화

◆정리

일본인의 이름은 언제 생겼을까?: 고대의 일본 이름

일본인의 이름은 고대의 ‘씨성제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의 일본인이 갖는 ‘묘지(名字)’는 헤이안 시대 후기에 탄생한 것입니다. 일본 이름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보았습니다.

‘씨’와 ‘성’은 다른 개념: 고대에 탄생한 ‘씨성제도’

고대 일본에는 ‘씨성제도(氏姓制度; しせいせいど; 시세세도)’라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이는 고대의 야마토(ヤマト) 왕권에 의한 지배 제도를 말합니다. ‘씨(氏)=씨족(氏族)이라고 불리던 혈연집단’와 ‘성(姓)=천황이 내린 씨족의 칭호’을 야마토 왕권이 관리했습니다.

‘씨(씨족)’는 야마토 왕권하에서 직무를 부여받고, 그 직무별로 ‘씨’를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군사 및 형벌을 담당했던 씨(씨족)는 ‘物部氏(もののべうじ; 모노노베우지)’, 신에 관한 일이나 제사를 담당했던 씨는 ‘中臣氏(なかとみうじ)’라는 식이었습니다.

[참고] ‘氏’와 ‘姓’는 합쳐 읽을 때는 ‘氏姓(しせい; 시세)’로 읽지만, 각각 읽을 때는 ‘氏(うじ; 우지)’, ‘姓(かばね; 카바네)’라고 읽습니다.

‘성’은 씨족이 부여받은 칭호로, 정치적・사회적인 상하관계를 표시했습니다. 이러한 성에는 ‘国造(くにのみやつこ; 쿠니노미야츠코)’, ‘連(むらじ; 무라지)’ 등이 있었습니다. 

고대의 씨성제도에서는 씨로 ‘직책’을, 성으로 ‘상하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던 셈인데요. 현대의 일본에서 씨성은 ‘씨(氏)=묘지(성)’, ‘성(姓)=나마에(이름)’으로 인식되며 사용되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화해 씨성제도가 없어지면서 씨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것입니다. 

천황이 성(姓)을 내리는 ‘사성(賜姓; しせい; 시세)’

고대의 무사나 유력자들은 천황에게 성을 하사받는 ‘사성’에 의해 성을 부여받았습니다. 고대 개념으로는 천황에게 지위를 부여받는 개념인데요. 한국어로는 ‘사성’, 일본어로는 ‘시세’라고 발음합니다. 

황족 중에는 일반 국민의 신분이 되는 ‘신적강하(臣籍降下; しんせきこうか; 신세키코카)’에 의해 신하의 적으로 내려가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은 그때까지의 성과 다른 성을 ‘사성’받았습니다. 이들을 ‘사성 황족’이라고 불렀는데요. 이러한 ‘신적강하’의 배경으로는 황족의 재정 상황이 거론됩니다. 황족이 늘어나면 재정 상황이 빠듯해지기 때문에 천황은 황위 계승자 이외의 황족을 신적강하했습니다. 신적강하를 명받은 황족은 황족 신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참고로, 황실의 여성이 일반 국민과의 혼인으로 황족의 신분을 벗어나는 경우 ‘신적강가(臣籍降嫁; しんせきこうか; 신세키코카)’[일본어 발음은 ‘신적강하’와 같음]라고 불렀는데, 현재에는 같은 개념을 ‘황족이탈(皇籍離脱; 코세키리다츠)’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이러한 사성에 의해서도 천황과 관련 있는 성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중 ‘藤原’, ‘源’, ‘平’, ‘橘’ 성(고대의 ‘씨성’ 개념에서는 ‘씨(氏)’에 해당)이 유명합니다. 일본 역사에 자주 등장하니 읽는 방법을 알아두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氏(うじ; 우지)

OO氏(OOし; OO시)

姓(かばね; 카바네)

藤原(ふじわら; 후지와라)

藤原氏(ふじわらし; 후지와라시)

朝臣(あそん; 아손)

源(みなもと; 미나모토)

源氏(げんじ; 겐지)

朝臣(あそん; 아손)

平(たいら[たひら]; 타이라[타히라])

平氏(へいし; 헤이시)

朝臣(あそん; 아손)

橘(たちばな; 타치바나)

橘氏(たちばなし; 타치바나시)

宿禰(すくね; 스쿠네)

-> 朝臣(あそん; 아손)

씨를 단독으로 부를 때와 달리 ‘OO氏’로 씨를 붙여 부를 때는 ‘미나모토(우지)’가 ‘겐지’로, ‘타이라(우지)’가 ‘헤이시’로 다르게 읽혀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중 ‘겐지’가 바로 유명한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 ‘히카루 겐지(光源氏)’의 씨입니다. >> ‘겐지모노가타리’

참고로 천황은 신분이 가장 높은 존재로 성명이 없었습니다.

헤이안 시대, 묘지(名字)의 탄생

이렇게 고대 일본에서는 ‘씨(우지)’와 ‘성(카바네)’이 다른 개념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던 중 헤이안 시대 후기에 ‘묘지(名字; みょうじ)’가 탄생했습니다. ‘공가(公家; くげ; 쿠게)’라고 불리던 귀족들이 ‘九条(くじょう; 쿠죠)’, ‘鷹司(たかつかさ; 타카츠카사)’, ‘一条(いちじょう; 이치죠)’ 등, 자신들의 거주지가 있던 지역의 이름으로 구별되게 되면서, 교토의 지명을 사용하는 공가들이 많아졌고, 지명을 ‘묘지(名字)’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헤이안 시대에는 귀족이 소유하는 농지인 ‘장원(荘園)’을 지키는 무사들, 지방을 개척하는 무사들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무사시시치토(武蔵七党)’[무사시 7당]이라고 불리는 유력한 무사 집단이 활약했는데요. 옛 행정 단위인 율령제에서 ‘무사시노쿠니(武蔵国)’로 불렸던 지역으로 현재의 도쿄도, 가나가와현, 사이타마현에 해당합니다, 이곳에서 활약한 무사시시치토의 무사들은 자신들이 지배하는 지명을 묘지로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요코야마토(横山党)’, ‘무라야마토(村山党)’, ‘코다마토(児玉党)’ 등. 즉, 헤이안 시대에 탄생한 묘지는 공가와 무사들이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도 시대의 일본 이름

에도 시대 농민 이름으로 많았던 것은 ‘左衛門(さえもん; 사에몬)’이나 ‘右衛門(うえもん; 우에몬)’이 붙는 이름이었습니다. 여성의 이름은 히라가나 2자 이름이 대부분. 여기서는 에도시대 일본 이름에 대해 소개합니다.

개명이 허락되었다

에도시대에는 인생의 주요 지점에 이름을 바꾸는 개명 문화가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였을 때와 성인이 된 뒤의 이름이 다른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신분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개명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현대 일본에서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것에 비해 에도 시대의 일본에서는 ‘이름은 변화하는 것’으로 일생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에도 시대 농민의 이름

헤이안 시대 후기에 탄생한 ‘묘지’. 에도시대에도 귀족이나 무사는 묘지를 사용했는데요, 농민들은 공적인 장소에서 묘지를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이 말은, 공적인 장소에서는 사용할 수 없지만 농민에게도 묘지는 있었다는 말도 되는데요. 그중에는 ‘묘지(名字)’에 ‘屋(や; 야)’를 붙여서 자기 가게 이름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묘지(名字)’를 사용할 수 없는 시대였기에 ‘묘지(苗字)’라는 표현을 만들어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苗’라는 한자는 ‘이름’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자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 ‘~를 선조로 하는 자손’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고. 이러한 배경에서 오늘날 일본에서는 성을 이야기할 때 ‘묘지(名字)’와 ‘묘지(苗字)’가 섞여 쓰이고 있습니다.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 이름의 변화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유명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めいじいしん; 메이지이신)’이 있었습니다. 귀족이나 무사 등의 특권 계급 사람들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묘지(성)를 갖고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제정된 법령에 따라 묘지(名字)가 국민 모두의 것이 되었다

메이시대 이후에는 국민 전체를 파악하고 호적을 편성하기 위해 묘지를 모든 국민이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묘지를 국민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법령을 제정했습니다.

평민 묘지 허가령(平民苗字許可令)

1870년에 제정된 법령으로, 일반 국민에게 묘지 사용을 허가한다는 내용입니다. 단,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묘지를 사용했다가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그래서 묘지를 실제로 등록하는 국민은 적었다고 합니다.

호적법(戸籍法)

호적 편성을 위해 1871년에 제정되어 묘지 등록이 추진되었습니다. 당시의 호적은 ‘집(家)’을 한 단위로 했고, 혼인 관계 및 부모・자녀 관계를 단위로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시후쇼레(姓尸不称令; せいしふしょうれい)

1871년에 제정된 법령입니다. 공문서에 씨성(氏姓)[앞의 ‘씨성 제도’ 참고]을 기재하지 말고 ‘묘지(名字)’[성]와 ‘나마에(名前)’[이름]만 기재하도록 정한 것입니다. 이로써 고대부터 계속되어온 ‘씨・성’이 폐지되고, 현대의 ‘묘지・나마에’ 표기가 정착했습니다.

묘지 필칭 의무령(みょうじひっしょうぎむれい; 묘지힛쇼기무레)

국민들이 묘지를 많이 등록하지 않아 1875년에 ‘묘지 사용을 의무화한다’는 내용으로 제정한 법령입니다. 

여기서 잠깐>> 현재 일본의 묘지는 약 10만~30만 종류

씨성제도가 사용되지 않게 되면서 일본 전국에 약 10만~30만 종류의 묘지가 생겨났다고 추정됩니다. 공적인 데이터는 남아 있지 않아 추정 폭이 큰 것인데요. 같은 한자라도 읽는 법이 다른 경우가 있고, 모양이 다른 한자를 사용하는 경우(예. 高野와 髙野, 青島와 青嶋 등) 도 있기 때문에 묘지의 숫자를 정확히 산출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메이지 시대 묘지(名字)의 예

‘묘지 필칭 의무령’에 의해 지금까지 묘지를 갖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도 새롭게 묘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명이나 직업 등에 유래한 묘지를 만들어 사용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글로 적은 읽는 방식은 대표적인 읽는 방식으로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명에서 유래한 이름]

長谷川(하세가와)/横山(요코야마)/渡辺(와타나베)/佐々木(사사키)

[직업에서 유래한 이름]

加賀谷(카가야)/鍛冶(카지)/犬養(이누카이)/服部(핫토리)

[방위(방향)에서 유래한 이름]

東(히가시)/西村(니시무라)/西(니시)/上村(우에무라)

[후지와라 가문(藤原家; ふじわらけ; 후지와라케)에서 유래한 이름]

(*’후지와라’는 헤이안 시대의 귀족 성)

伊藤(이토)/安藤(안도)/佐藤(사토)/遠藤(엔도)

[풍경에서 유래한 이름]

中島(나카지마)/田代(타시로)/山口(야마구치)/小谷(오타니)

여기서 잠깐>> 일본에 많은 ‘묘지(성)’은? 일본인들도 읽기 어려워하는 특이한 성은?

공적인 데이터는 발표되지 않지만, 일본의 묘지(성)을 연구하는 학자의 조사나 일반 기업이 발표하는 랭킹에서는 ‘佐藤(사토)’, ‘鈴木(스즈키)’, ‘田中(다나카)’, ‘高橋(다카하시)’ 등의 성이 일본에 많다고 이야기됩니다. 

또한 일본 성 중에는 일본인도 읽지 못하는 특이한 읽기 방식을 가진 성이나 세대수가 적어 매우 드문 성도 있습니다. 그 예로는 다음과 같은 성들이 있습니다.

・小鳥遊(たかなし; 타카나시): “鷹がいないから小鳥が遊べる(매가 없어서 작은 새들이 놀 수 있다)”라는 뜻에서 ‘매가 없음’으로 읽히는 ‘たかなし’로 읽게 된 것.

・御手洗(みたらい・みたらし; 미타라이・미타라시)

・月見里(やまなし; 야마나시)

・百目鬼(どうめき; 도메키)

・四月一日(わたぬき; 와타누키): ‘방한복에 넣은 솜을 4월 1일에 뺀다’는 뜻에서 ‘솜을 뺀다’는 뜻의 ‘わたぬき’로 읽게 된 것.

・英(はなぶさ; 하나부사)

이러한 특이한 성들은 특정 지역에 모여 있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특이한 성뿐 아니라 이름 중 읽는 법이 특이한 이름을 가리키는 '키라키라네무', 지난 시대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시와시와네무'도 자주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이 두 개념과 일본 인기 이름의 시대별 변천에 대해 소개한 <예쁜 일본 이름 기본 지식: 일본의 인기 있는 여자 이름, 남자 이름, 이름 읽고 부르는 법> 기사도 함께 읽어보세요. 

부부 동씨(夫婦同氏) 원칙 제정

1898년에 부부가 같은 성을 써야 한다는 ‘부부 동씨 원칙’이 제정되었습니다. 남편 또는 아내의 성으로 통일하고 혼인 신고서에 기재해야 하는데요. 같은 성이 아니면 같은 호적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부부 별성(부부가 별도의 성을 사용)’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選択的夫婦別姓制度)’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選択的夫婦別姓制度)란?

부부가 희망하는 경우, 결혼 후에도 성을 바꾸지 않고 두 사람 모두 구성(旧姓; きゅうせい; 큐세), 즉 원래 성을 사용해도 되는 제도. 1979년 국제연합이 ‘여자 차별 철폐 조약(女子差別撤廃条約)’을 도입하면서 거론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이 제도가 허용되지 않는 주된 이유로는 가족임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습니다. 단,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게 된 오늘날 ‘결혼해도 구성 그대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참조: 法務省「選択的夫婦別氏制度(いわゆる選択的夫婦別姓制度)について」

호적 제도가 ‘집’에서 ‘가족’ 단위로 변경

호적법이 제정될 때만 해도 호적은 ‘집(家)’을 단위로 한 것이었지만 부부나 부모・자녀를 ‘가족’ 단위로 하는 호적 제도로 변경되었습니다. 쇼와 23년(1948)년의 일입니다. 이로써 국민의 부부 관계 및 부모・자녀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일본에서는 가족을 단위로 하는 호적 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가족은 같은 호적에 들어가 같은 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리

일본 이름의 역사는 고대에서 탄생한 ‘씨성 제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의 일본에서는 모든 국민이 ‘성’과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성’을 갖지 않은 국민도 아주 많았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이름에 관한 다양한 법령이 제정되었고, 국민 모두가 성을 등록하는 것이 의무화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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