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일본 문화] 47 로닌의 이야기, ‘추신구라(忠臣蔵)’.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은 이야기의 상세 줄거리, 묘가 있는 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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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5

2013년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로 개봉되며 해외에도 유명해진 ‘47 로닌’. 47인의 낭인(주군 잃은 무사)라는 뜻으로, ‘추신구라(忠臣蔵; ちゅうしんぐら)’라는 이야기로 전해지며 가부키, 연극, 영화의 소재로 사랑받아왔습니다. ‘추신구라’가 드라마 등으로 방송되는 것으로 연말이라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을 정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수극’이라고 불리며 무사들의 충성심을 담아낸 ‘추신구라’ 이야기와 도쿄에 있는 그들의 묘를 소개합니다. 일본 역사가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추신구라’와 ‘47 로닌’으로 입문해보세요~

<내용 소개>

◆이야기의 시작: 아코 사건(赤穂事件)

◆주군을 잃은 가신들, ‘낭인(로닌; 浪人)’이 되어 흩어지다

◆철저한 준비와 계획, 주군의 복수를 위해 모인 47명의 낭인

◆낭인들의 최후, 그들의 이야기가 ‘추신구라’로 사랑받은 이유

◆[추신구라 관련 명소] 센가쿠지(泉岳寺)와 아코 의사 기념관(赤穂義士記念館), 아코 의사제(赤穂義士祭)

이야기의 시작: 아코 사건(赤穂事件)

‘추신구라(忠臣蔵)’는 ‘닌교조루리(人形浄瑠璃)’라는 사미센 반주에 따라 진행되는 전통 인형극으로 만들어지면서 붙은 타이틀로,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인 ‘아코 사건(赤穂事件)’(1701~1703)을 바탕으로 합니다. ‘아코(赤穂)’는 현재의 효고현에 위치하고 있던 ‘아코번(赤穂藩)’을 말합니다. 이 아코번의 번주(藩主)와 그의 부하 중 47인의 낭인(47 로닌)들이 일으킨 사건을 ‘아코 사건’이라고 합니다.

사건은 17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일본은 에도 시대로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3월 14일 오전 9시경. 에도 성내의 마쓰노오로카(松之大廊下; まつのおおろうか), 즉 쇼군의 거처이자 막부의 정청인 혼마루고텐과 쇼군과의 대면소였던 시로쇼인(白書院) 사이를 잇는 길이 50미터, 폭 4미터의 복도에서 아사노 나가노리(浅野長矩)라는 당시 아코번의 번주가, 막부의 고케(高家)[의식과 전례 등을 담당하는 직책]인 기라 요시히사(吉良義央)에게 칼을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기라는 미간과 등을 찔리지만 부상이 크지 않았고, 아사노는 기라의 부하들에게 제압당합니다.

[사진] 아코 사건이 발생한 ‘마쓰노오로카’의 터

이날은 쇼군의 새해 인사에 답례하는 의식의 마지막 날로, 아사노 나가노리는 접대를 담당하는 칙사로, 기라 요시히사는 그를 지도하는 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고케는 명망 높은 가문의 사람들만이 맡을 수 있는 직책으로, 아사노가 그를 공격한 것은 소위 ‘업무상 스트레스’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이런 소동을 벌인 자에게 기다리는 것은 당시 문화에서는 ‘할복(切腹; 셋푸쿠)’뿐. 아사노는 죄인으로 일시 수감되고, 기라 요시히사는 자조치종을 조사받은 뒤 성을 나가 요양을 하게 됩니다. 당시 쇼군인 쓰나요시(綱吉)는 이 일을 보고받고, ‘성스러운 의식을 피로 더럽히다니!’ 하고 격노하며 당일에 바로 재판을 열어 아사노에게는 즉일 할복, 아사노의 아코번은 없애라고 명합니다. 할복 장소도 실내가 아닌 실외로 다이묘(大名; 무사계급으로 지방을 관할하던 영주 등의 지배세력)에게 걸맞지 않는 처사라는 반발이 있었지만 쇼군의 의향이라 거역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이는 싸움이 있을 때 양쪽 다 잘못이 있다고 여기고 양쪽의 의견을 듣고 재판하던 당시의 통례에서도 어긋난 결정이었습니다. 아사노는 할복 전 자신의 가신들에게 서면을 남기고자 종이와 붓을 달라 요청했으나 역시 허락되지 않았고, 할 수 없이 구두로 전언을 남기고 현장에 있던 이가 이를 받아적게 됩니다. 

그 내용은 짧았지만 수수께끼가 가득했습니다. 핵심은, “전부터 생각해왔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아사노의 유해는 에도 다카나와(高輪)의 센가쿠지(泉岳寺)에 안치됩니다.

주군을 잃은 가신들, ‘낭인(로닌; 浪人)’이 되어 흩어지다 

에도에서 아사노의 아카번까지는 약 620킬로미터. 보통 여정이라면 18일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였습니다. 단, 긴급 사안인 만큼 14일 저녁에 아사노가 사건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아카번으로 출발, 19일 저녁에 아카번의 가신들에게 도착합니다. 이후 아사노의 할복, 아사노가의 영지 몰수, 아사노 가문의 가명 단절 등의 처분에 대한 소식도 도착. 

가신들의 대표였던 ‘오이시 요시오(大石良雄)’[‘오이시 쿠라노스케(大石内蔵助)’]는 가신들을 모아 사흘간 회의를 열어 향후 거취를 결정하게 되는데, ‘농성 후 기꺼이 죽겠다’, ‘기라를 치러 가자!’ 등의 의견이 있었지만 더 큰 뜻, 즉 주군 아사노의 동생을 세워 아사노가를 부흥시키고 이후 기라의 처벌을 요구하는 뜻을 품고 일단 쇼군의 군사들에게 성문을 열게 됩니다. 성문이 열리기 전 많지 않은 분배금만을 받고 직책과 살곳을 잃은 가신들은 ‘로닌(浪人)’, 즉 ‘낭인(‘떠돌이’의 의미가 있음)’ 신분이 됩니다. 

[사진: 센가쿠지의 오이시 요시오 동상]

낭인들은 교토, 오사카 등지로 흩어지고, 오이시 요시오는 교토의 ‘야마시나(山科)’라는 곳으로 옮겨 밭을 일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실은 뜻을 이루기 위해 낭인들과 연락을 취하기 쉬운 장소를 선택한 것이었다는. 이곳에서 오이시 요시오는 에도로 사람을 보내 쇼군과 연이 닿는 절의 승려, 주군 아사노의 사촌 등과 연락을 취하며 가문을 되살리고 기라 역시 처벌을 받도록 하기 위한 협력을 약 1년간 계속해서 요청하게 됩니다. 동시에 ‘당장 기라를 치자!’는 급진파 가신들을 설득, 부흥이 수포로 돌아간 뒤에 그리하자고 타협점을 찾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702년 4월. 주군의 1주기를 보낸 뒤에 오이시는 작전 실행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누를 끼칠 것을 고려, 아들 이외의 가족과 연을 끊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였으나, 쇼군은 아사노의 동생에게 아사노가의 본가가 있는 히로시마로 가서 가문을 잇게 명령합니다. 이는 곧, 아코의 아사노가를 부흥시키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뜻. 가신들을 교토로 소집한 오이시는 ‘이렇게 된 이상 기라의 목을 접수해 주군의 원한을 풀고 가신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하자’고 선언합니다.

철저한 준비와 계획, 주군의 복수를 위해 모인 47명의 낭인

단, 이 계획은 쇼군의 허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 계획이 성공으로 돌아가더라도 쇼군의 처분을 피할 수 없을 터였고, 실패로 돌아간다면 대대로 웃음거리가 될 수 있었던 터라 당시까지 함께해온 130여 명의 가신들 중 절반 이상이 불참을 선언합니다. 

가짜 이름과 직업을 대며 소인수 단위로 에도로 들어간 가신들. 그중 병술에 능한 요시다 추자에몬(吉田忠左衛門)은 기라의 저택 부근을 면밀히 검토하며 침입 루트를 설정, 지원군이 왔을 때의 대처 방법 등을 검토합니다. 당시 소방대원들의 복장을 하고 불을 끄러 가는 듯 저택으로 돌격하는 계획을 포함해서 말이죠. 또한, 가신들 중 둘은 팥과 쌀을 싸게 취급하는 상점을 열어 기라가에서 일하는 여종들, 젊은 무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내부의 용태를 살핍니다. 다른 가문 사람으로 위장해 저택 내부에 들어가 침입 가능한 구멍 등을 살핀 가신들도 있었습니다.

[사진] 기라 저택 터인 혼조 마쓰자카초 공원(本所松坂町公園)

결전의 날을 정할 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목표인 기라가 저택에 확실히 머무르는가 하는 것. 이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던 중 차회(차 모임)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 되는데 그 차회가 하필 중지되고 맙니다. 가까스로 다른 가신이 연기된 차회가 12월 14일에 열린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14일은 주군 아사노가 명을 달리한 3월 14일과 날짜가 같아 가신들은 운명을 예감하는데…

'주군을 위해, 팀을 우선으로, 성공 후에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음을 각오한다'. 이러한 원칙에 전원 동의하고 아사노의 가신들, ‘47인의 낭인(47 로닌)’들이 기라의 저택으로 침입합니다(침입하기 전 이웃집에 '소란이 있을 것이나 주군을 위한 일이니 양해를 부탁한다'고 정중히 부탁하니다).

기라의 호위 무사들을 쓰러트리며 1시간 여 만에 기라의 침소로 침입해들어간 낭인들. 그런데… 침소에 기라는 없었습니다. 저택 안의 곳곳을 수색하다 탄 창고에서 사람 소리가… 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남자 세 명이 튀어나왔고, 이들을 제압한 뒤 다시 소리가 나서 보니 흰 소복 차림의 노인, 기라가 있었습니다.

기라의 목을 베고, 기라가 확실한지 확인까지 마친 낭인들은 이웃집에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하고 정중히 인사한 뒤 주군의 묘가 있는 센가쿠지를 찾아 ‘원을 풀었습니다’ 하고 보고합니다. 그리고 막부 안으로 사람을 보내 자신들의 한 일을 쇼군께 알리게 하고 처분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보고를 전해들은 쇼군은 ‘대단한 이들이군’ 하고 그들의 충성에 감동했다고. 그리고 낭사들을 네 개의 다이묘 밑으로 나뉘어 들어가도록 합니다. 

낭인들의 최후, 그들의 이야기가 ‘추신구라’로 사랑받은 이유

당시에는 주군을 위한 이러한 복수는 의로운 일로 평가받을 만했습니다. 그런데 낭인들 본인들도 이미 예상했듯, 이들의 복수는 죄를 짓고 할복한 주군을 위한 것이었기에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치부되었고, 쇼군에게 공식적으로 허용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쇼군은 법도를 세우기 위해 이들은 할복을 해야 한다는 학자의 설을 채택합니다. 그리하여 1703년 2월 4일, 47인의 낭인들은 각자 소속된 다이묘의 거처에서 전원 할복합니다. 그리고 주군인 아사노의 묘가 있는 센가쿠지에 묻힙니다.

아사노가 칼을 휘두른 것은 기라의 괴롭힘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사실이 어찌되었든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쇼군의 독단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게다가 아사노가의 부흥도 허락되지 않은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낭인들이 느꼈던 마음은 맹목적인 충성심보다는 ‘부정의’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었다고 이야기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철저히 준비해 목적을 달성한 낭인들의 이야기를 일본인들은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것인데요. 낭인들이 기라를 칠 때 이웃집에서 이를 허용해준 것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도움으로 뜻을 이루어낸 것도 감동의 이유로 꼽힙니다. ‘47 로닌’의 이른바 ‘아코 사건’이 50년 뒤에 ‘추신구라(忠臣蔵)’[충신의 전범]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공연된 것은 이들 ‘추신(충신)’들을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는, 당시 일본인들의 심적 동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내용 참고: 2019년 12월 18일 warakuweb(辻明人) <忠臣蔵とは?あらすじや登場人物を徹底解説!なぜ赤穂浪士討ち入りを忠臣蔵と呼ぶのか> https://intojapanwaraku.com/culture/62854/

[추신구라 관련 명소] 센가쿠지(泉岳寺)와 아코 의사 기념관(赤穂義士記念館), 아코 의사제(赤穂義士祭)

주군 아사노와 47인의 낭인은 도쿄의 시나가와에서 가까운 미나토구의 다카나와(高輪)의 센가쿠지(泉岳寺)에 매장되었습니다. 센가쿠지 내에는 이들의 묘와 함께 아코 의사 기념관(赤穂義士記念館)도 마련되어 있어 아코 사건에 대해 알아보며 유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절과 묘를 둘러보는 것은 무료이고, 기념관 입장료는 500엔입니다.

센가쿠지 가는 법, 영업 시간

가장 가까운 역은 센가쿠지역(泉岳寺駅; 도에이 아사쿠사센)으로 역에서 도보 약 1분 소요. 다카나와게이트웨이역(高輪ゲートウェイ駅; JR야마노테센, 게이힌도호쿠센)에서는 도보 7분 소요. 

영업 시간은 시기에 따라 다르므로 ‘센가쿠지 웹사이트: ACCESS’를 참고해주세요.

아코 의사제(赤穂義士祭)

도쿄 센가쿠지의 아코 의사제

12월 14일, 47 낭인들이 기라를 치러 간 날짜에 센가쿠지에서는 ‘아코 의사제(赤穂義士祭; あこうぎしさい; 아코기시사이)’가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승려들에 의해 낭인들의 영을 기리는 의식이 치러지고, 47 낭인들을 기념하며 그들의 복장을 하고 기라의 저택 터가 있는 도쿄 료고쿠(両国)의 혼조 마쓰자카초 공원(本所松坂町公園)에서 센가쿠지까지 퍼레이드를 하는 ‘의사 행렬(義士行列)’이 이어집니다. 4월 1일~7일에도 센가쿠지 아코 의사제가 있습니다.

효고현 아코시의 아코 의사제

또한, 아사노와 47 낭인들의 본거지가 있었던 현재의 효고현 아코시에서도 역시 12월 14일에 ‘아코 의사제’가 치러집니다. 1903년부터 시작되어 100년이 넘게 계속되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퍼레이드들이 합쳐진 ‘주신구라 퍼레이드(忠臣蔵パレード)’가 하이라이트로 꼽힙니다. 

*참고: 2019년 4월 1일 아코시 홈페이지 <赤穂義士祭> https://www.city.ako.lg.jp/kensetsu/kankou/gishisa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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