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쇼‌ ‌시대와‌ ‌샐러리맨‌

WeXpats
2020/10/22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및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귀멸의 칼(鬼滅の刃)>. ‘오니(鬼)’, 즉 귀신이 등장하지만 배경은 ‘다이쇼(大正) 시대’라고 하는데? 2020년 일본을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풍경들 중 다이쇼 시대(1912년 7월 30일~1926년 12월 25일까지)와 연관이 깊은 부분들을 간추려 소개합니다. 

<내용 구성>

◆엔타로버스, 엔타쿠(택시)

◆문화주택, 마루노우치

◆카페, 레스토랑

◆대중문화, 샐러리맨

엔타로버스, 엔타쿠(택시)

오늘날 일본의 교통 수단이라고 하면 ‘전철(電車; 덴샤)’가 가장 먼저 떠오르죠. 현대식 전철 이전에는 흑백 영상 속에서 보았듯 ‘노면전차’가 도시를 달렸겠죠? 일본의 최초의 전차는 다이쇼의 이전 시대인 메이지(明治) 시대인 1895년(메이지 28년)에 교토에서 가장 먼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메이지 천황이 도쿄를 수도로 삼으면서 에도가 도쿄로 개칭된 것이 1868년. 1869년에는 정부가 교토에서 도쿄로 이동하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교토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인구 유입을 꾀하는 일환으로 전차를 빠르게 도입했다고 전해집니다. 

메이지 시대에 이어 노면전차가 달리고 있던 다이쇼 12년인 1923년, 도쿄가 포함된 일본의 간토(관동) 지방에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관동대지진(関東大震災)’입니다. 노면전차 레일도 상당히 훼손된 큰 지진이었는데요. 대대적인 도로 정비 작업과 함께, 이용이 어려워진 노면전차를 대용할 새로운 교통 수단인 ‘승합자동차’가 도입됩니다. 승합자동차는 쉽게 말해 버스 용도를 하는 자동차인데요. 오늘날의 버스보다는 훨씬 작은 자동차에 가까운 사이즈입니다. 도쿄에서는 1919년부터 운행되고 있었던 ‘도쿄승합자동차(일명 ‘아오버스(青バス)’)’를 운행하고 있었는데, 지진으로 교통 수단을 확충하기 위해 긴급히 ‘엔타로버스(円太郎バス)’라는 승합 버스를 도입합니다. 차종은 ‘포드 모델 T(T형 포드)’ 트럭이었습니다. 

요금이 비싸다는 인식으로 쉽게 이용해보지 못하는 일본의 택시. 1924년(다이쇼 13년)에는 오사카 시내를 1엔으로 균일하게 달리는 택시가 등장했습니다. 이름하여 ‘엔타쿠(円タク)’. 엔+타쿠시(タクシー)를 더한 애칭입니다.

문화주택, 마루노우치

수도였던 교토에서 도쿄로 많은 이들이 옮겨간 것과 반대 방향으로, 관동대지진 이후에는 도쿄에서 오사카・고베로 생활 터전을 옮긴 이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고베의 항구 ‘고베항’은 동양 최대 무역항으로, 서구문화를 가장 먼저 일본에 전한 곳이었는데요. 일본의 사업가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가 오사카-고베간을 연결하는 ‘한큐급행전철’이 달리는 교외에 서양식 주택을 갖춘 베드타운을 조성했습니다. 다이쇼 시대에 도시에 자리잡은 서양식 주택을 ‘문화주택(文化住宅)’이라고 합니다. 본인이 은행에 다니던 ‘샐러리맨’이었던 고바야시는 다이쇼 시대에 등장한 ‘샐러리맨’들이 교외에 내 집 장만을 할 수 있도록 ‘주택 론’을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20퍼센트를 선불금으로 내고, 남은 비용은 10년간 매월 갚아 소유권을 이전하는 판매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교외에서는 석유 램프를 사용하는 집도 많았는데, 이 새로운 주택 단지에서는 전등을 설치했다고 하네요. 

큐피(キューピー)

요즘도 일본에 가면 자주 눈에 띄는 갓난아이 모습의 인형 ‘큐피’. 다이쇼 시대에 소개되어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셀룰로이드 큐피(1917년)를 비롯해 다이쇼 시대에는 셀룰로이드로 만든 장난감들이 많이 제작, 보급되었습니다. 눕히면 눈을 감고 세우면 눈을 뜨는 ‘네무리닌교(眠り人形)’는 다이쇼 시대에 수출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도쿄에서는 지진의 피해,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오던 거리가 훼손되었습니다. 지진 피해가 적엇던 지역인 마루노우치(丸の内), 오테마치(大手町) 지역에 엘리베이터를 갖춘 빌딩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 ‘마루노우치 빌딩가’의 시작이었습니다. 현재 도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구인 세타가야구(世田谷区)(*)는 관동대지진 시기만 해도 논밭뿐이었는데요. 지진 피해 지역에서 이 세타가야구와 스기나미구(杉並区) 등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도쿄의 도심과 부도심

 

마루노우치, 오오테마치가 속한 치요다구(千代田区)는 오늘날 수도 도쿄의 도심(都心)이라고 불리죠(치요다구와 함께 주오구(中央区), 미나토구(港区)의 3구가 도심). 그러면 도쿄의 부도심(副都心)은? 신주쿠구, 시부야구, 도시마구(豊島区), 분쿄구(文京区)의 4개 구인데요. 이중 신주쿠와 시부야가 사람이 많이 모이던 번화가에서 ‘부도심’으로서 성장한 것도 다이쇼 시대입니다. 

*1 도쿄도총무국통계부 2020년 3월 1일 자 「도쿄도 인구(추계) 개요」 pdf p.1 https://www.toukei.metro.tokyo.lg.jp/jsuikei/2020/js203f0000.pdf

카페, 레스토랑

카레라이스, 돈카츠(돈까스), 중화소바(라멘)

일본 하면 떠오르는 음식들 중 ‘카레’, ‘돈카츠’, ‘일본 라멘’(유입 당시 ‘중화소바(中華そば)’라고 불렸고, 현재도 라멘을 ‘중화소바’로 판매하는 곳들이 많음)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보급된 것도 바로 다이쇼 시대. 이 음식을 판매하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도시의 풍경으로 자리잡게 된 것도 다이쇼 시대입니다. 주요 고객은 도시에 사는 ‘중산층’. 오늘날보다 다이쇼 시대의 도시/비도시의 차이는 훨씬 더 커서, 백화점, 빌딩, 극장, 레스토랑, 카페 등이 모두 도시에 집중되었습니다. 

카페가 유행한 만큼 커피도 당연히 인기였습니다. 1911년 도쿄에 나란히 개업한 <카페 프랑탕(カフェー・プランタン)> <카페 파우리스타(カフェー・パウリスタ)>, <카페 라이온(カフェー・ライオン)>이 그 중심이 되었고, 다이쇼 시대에는 점포를 전국으로 늘려가는 등 커피 문화가 일본에 정착하게 됩니다. >> 일본 카페의 역사와 문화

고로케, 빵

고로케(コロッケ)가 어느 나라 음식인지 물으면 정확히 대답하기 어렵죠. ‘일본?’이라고 되묻는 이들도 몇 명은 있을 듯합니다. 고로케는 다이쇼 이전의 메이지 시대에 프랑스 및 영국의 요리로서 일본에 소개되었습니다. 프랑스의 ‘크로켓(croquette)’은 일본의 ‘크림고로케(クリームコロッケ)’와 비슷합니다. 단, 프랑스에서는 기름에 튀기는 것이 아니라 오븐에 구워 만드는 차이가 있고, 고기와 생선으로 만든 서양식 크로켓과 달리 일본에서 ‘고로케’로 보급된 것은 감자를 사용한 고로케였습니다. 

처음 소개되었을 때는 고급 요리라는 인식이었지만 관동대지진 이후에는 먹을 수 있지만 색이 좋지 않은 고기, 자르고 남은 고기 등을 이용해 만든 고로케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 많은 이들이 즐겨 먹게 되었습니다.

1918년(다이쇼 7년)에는 유명한 ‘쌀소동(米騒動)’ 쌀값이 폭등해 ‘빵’을 대용식으로 삼자는 운동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펼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양식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재밌는 일본 음식 문화] 오므라이스, 하야시라이스, 도리아… 일본 '양식' 편> 기사도 읽어보세요!

대중문화, 샐러리맨

다이쇼 시대에는 아직 ‘귀족’, ‘평민’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였습니다. 1918년(다이쇼 7년)에는 다이쇼 시대의 내각 총리대신인 하라 다카시(原敬)는 ‘평민’ 출신이라고 이야기 되었죠. 이런 배경 속에서 ‘대중’과 ‘대중문화’가 등장한 것이 다이쇼 시대. ‘대중문화’를 선두한 ‘대중’은 ‘샐러리맨(サラリーマン)’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택 론으로 집을 장만하고, 도심의 백화점, 카페, 극장을 이용하고, 고로케를 좋아하고, 아이들에게는 셀룰로이드 큐피를 선물했습니다. 서구식 미용실에서 모던한 7:3 가르마(七三分け)를 주문하고, 서점에서 한 권에 1엔인 ‘엔폰(円本)’을 사보기도 했습니다.

엔폰(円本)

다이쇼 15년인 1926년. 일본의 출판사 가이조샤(改造社)에서 「현대일본문학전집(現代日本文学全集)」이 간행되기 시작합니다. 이를 계기로 ‘문학전집 열풍’이 불어 각 출판사에서 한 권에 1엔으로 책정한 전집(시리즈)을 출판하게 됩니다. ‘엔폰’이라는 속칭은 소비자들이 1925년 오사카, 1927년 도쿄에서 등장한 1엔 택시 ‘엔타쿠’에서 따온 말이었습니다. 한 권에 1엔이지만, 낱권 구매가 아니라 ‘전권 예약제’로 매월 한 권씩 받아 보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대지진 이후 출판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1엔은 당시 대학 졸업자 첫 월급의 약 2%였다고 합니다(*).

*『가격의 메이지・다이쇼・쇼와 풍속사(値段の明治・大正・昭和風俗史)』상(上), 주간아사히 편(週刊朝日編),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아사히문고(朝日文庫)〉, 1987년 p. 601 

'다이쇼'는 일본 연호와 관련해서도 자주 접합니다. <일본 연호, 왜 필요할까? 실제로 자주 사용될까? 메이지, 쇼와(소화), 헤이세이(평성), 2019년에 시작된 레이와까지, 일본 연호 Q&A> 기사로 일본 연호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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