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조니워커’, ‘글렌피딕’은 알아도 일본의 위스키 이름은 ‘산토리...’? 정도밖에 모른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일본 위스키의 역사와 기본 지식, 대표 브랜드를 소개합니다.
<내용 소개>
◆일본 위스키의 이름: 산토리의 ‘야마자키’, ‘하쿠슈’, 닛카의 ‘다케쓰루’, ‘요이치’, ‘미야기쿄’
일본 위스키 기본 지식
‘일본 위스키’란, 일본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를 말합니다. ‘위스키’의 영어 표기는 ‘WHISKEY
’와 ‘WHISKY’ 두 가지가 있는데 앞의 ‘E’를 포함한 표기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 아일랜드, 일본은 스코틀랜를 따라 ‘WHISKY’라는 표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옛 일본어 표기는 ‘ウヰスキー’가 사용되기도 했는데 ‘ヰ’는 ‘wi’였다가 ‘i’로 발음이 바뀌었습니다. 현재는 ‘ウイスキー’라고 가타카나로 표기하고, ‘우이스키’라고 발음합니다. 2020년 12월 <일본경제신문(日本経済新聞)>에서 국내외에서 일본 위스키의 평가와 인기가 높아져 원주(原酒)가 부족하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 12월 11일 日本経済新聞 <ジャパニーズウイスキー 第2の夜明け> https://www.nikkei.com/article/DGXMZO67066420X01C20A2DM1000/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제조 기술을 배운 다케쓰루 마사타카
1920년 11월, 훗날 닛카위스키(ニッカウヰスキー)를 창업한 다케쓰루 마사타카(竹鶴政孝; 1894~1979)가 스물여섯의 나이로, 스코틀랜드에서 2권의 노트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히로시마에서 주조업과 제염업을 하는 집안의 삼남으로 태어난 그는 두 형과 달리 주조에 관심을 갖고 오사카고등공업학교 주조과에 진학해 공부했는데요. 졸업을 앞둔 1916년 3월에 양주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선배를 통해 ‘셋쓰 주조(摂津酒造)’에 입사합니다. 12월에 징병 검사가 예정되어 있어 9개월간 일해보기로 한 것인데, 징병 검사에서 ‘주조업은 화약제조에 필요한 기술이므로 입대시키지 않고 앞으로도 제조에 종사시키는 쪽이 군수 산업을 활성화시킨다’고 군 검사관의 판단으로 입대를 면제받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1918년에 사장과 상무의 특명으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에서 유기화학과 응용화학을 공부하게 된 다케쓰루. 스코틀랜드 엘긴에 위치한 롱몬(LONGMORN) 증류소, 스코틀랜드 캠벨타운의 헤이즐번(Hazelburn) 증류소에서 증류 기술을 익히고, 1920년에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알게 된 의학부 여학생 ‘엘라’의 막내 남동생에게 유도를 가르쳐주면서 엘라의 여동생 ‘리타’와 친해져 결혼합니다. 가족들의 반대로 조용한 결혼식을 올렸고, 일본에 와서는 다시 다케쓰루의 집안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해 결국 회사 근처에 신혼집을 얻어 분가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충실히 수업을 받으며 정리한 두 권의 노트를 회사 사장님께 제출하면서 일본 국산 위스키의 제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퇴직, 다케쓰루는 오사카의 고등학교에서 화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川又一英「第一章 リヴァプール行きオルドナ号」『ヒゲのウヰスキー誕生す』新潮社、1982年11月10日、pp.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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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サントリー, SUNTORY)
일본 위스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인 ‘산토리’. ‘산토리’의 창업자인 토리이 신지로(鳥井信治郎; 1879~1962)와 다케쓰루의 인연은 1923년에 시작됩니다. 1907년에 일본인 입맛에 맞춰 제조한 ‘아카다마 포트 와인(赤玉ポートワイン)’을 발매, 일본 와인 시장을 60% 점유할 정도로 회사를 성장시킨 토리이 사장은 1923년, 일본에서 본격적인 위스키를 생산하려는 뜻을 품고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공부를 한 다케쓰루를 채용, 야마자키(山崎) 증류소를 세워 위스키 제조를 시작합니다. 토리이는 다케쓰루가 셋쓰 주조에서 일할 때 셋쓰 주조에 모조(模造)와인 제조를 맡겨본 적이 있어 안면이 있었던 것이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본래 다케쓰루는 스코틀랜드와 풍토가 비슷한 홋카이도에 증류소를 세워야 한다고 했지만, 경영자인 토리이는 운송비가 많이 드는 점과 고객에게 증류소 견학을 시키고 싶다는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국 오사카 근교의 다섯 개 후보지 중 스코틀랜드의 풍토에 가깝고 서리가 많이 내린다는 조건으로 설립지를 결정, 다케쓰루가 직접 증류소와 제조 설비를 설계했습니다. 이곳이 산토리의 ‘야마자키 증류소(山崎蒸溜所)’입니다.
1929년, 일본의 첫 국산 위스키 ‘산토리 위스키 시로후다(白札)’ 발매
위스키는 제조를 시작하면 출하까지 수년이 걸리는 것이 특징. 야마자키 증류소를 세운 지 6년 만에 일본의 첫 국산 위스키 ‘시로후다(白札)’가 발매됩니다. ‘시로후다’는 ‘화이트 라벨’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으로 전후에는 ‘화이트(ホワイト)’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시로후다’에 이어 1930년에 ‘아카후다(赤札)’(현재의 ‘레드(レッド; RED)’)가 발매. 그런데 두 위스키 모두 판매 실적은 부진했다고 합니다. 모조 위스키에 오히려 입맛이 맞춰진 일본인들에게 본격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독특한 향이 오히려 맞지 않았다고 하네요.
닛카 위스키(ニッカウヰスキー)
다케쓰루는 토리이 사장의 장남에게 위스키 제조 기술을 가르치고 일하기로 약속한 10년을 채운 뒤 1934년 3월에 토리이 사장의 회사를 떠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에 홋카이도의 요이치(余市)에서 위스키 제조를 시작하기로 하고 7월에 출자를 받아 회사를 설립, 대표 전무로 취임합니다. 이 회사가 후에 닛카 위스키의 전신이 되는 ‘대일본 과즙(大日本果汁)’입니다.
회사 이름처럼 한동안은 요이치가 사과 산지인 점을 활용, 사과 주스를 만들어 판매했는데, 당시 과즙이 든 청량음료를 만들던 타사들과 달리 과즙 100퍼센트의 사과 주스를 5배 정도 비싼 가격으로 판매해 역시 사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100퍼센트라 주스가 탁해진 것이 오히려 오해를 사서 반품이 이어지기도 했다고.
다시 5년이 흐른 1940년, 결국 특기를 살리기로 한 다케쓰루가 독립한 뒤 처음 만든 위스키가 발매됩니다. ‘대일본 과즙(大日本果汁)’의 ‘日(닛)’와 ‘果(카)’를 따서 ‘닛카 위스키(ニッカウヰスキ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전후 타사에서 원주를 사용하지 않은 질 낮은 위스키를 내놓을 때도 기존보다 질은 떨어지더라도 원주를 당시 주세법 상 상한인 5%까지 넣었던 다케쓰루 씨. 1967년는 미야기현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기로 하고 1969년 직접 설계를 담당해 착공,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3등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산토리 가쿠빙(サントリー角瓶)과 ‘가쿠하이’
다케쓰루가 홋카이도의 요이치에서 사과 주스를 만들며 자신의 위스키를 준비하고 있던 1937년. 토리이 사장의 산토리에서는 히트 상품 ‘산토리 가쿠빙(サントリー角瓶)’이 발매됩니다. 전용 유리에 특유의 거북 등껍질 무늬가 들어간 각진 병(角瓶)이 특징이라 이름이 ‘가쿠빙(角瓶)’이 되었고, 약칭 ‘가쿠(角)’로 불리게 되었는데요. 보리가 주원료인 몰트 위스키와 옥수수, 호밀, 밀 등을 사용한 그레인 위스키를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의 대표 상품으로, 지금도 일본의 이자카야에서 ‘가쿠하이’로 친숙하게 만날 수 있스빈다. ‘가쿠하이’란, ‘산토리 가쿠 하이볼’, 즉 ‘산토리 가쿠빙’ 위스키를 사용한 ‘하이볼’을 뜻합니다.
산토리와 닛카의 증류소(견학 프로그램)
일본의 위스키 증류소의 위치는 위스키 이름과도 관련이 있어 알아두면 도움이 됩니다. 앞에 소개한 산토리와 닛카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이름들입니다.
<산토리 위스키 증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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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자키 증류소(山崎蒸溜所): 오사카부 미시마군(大阪府三島郡島本町山崎5丁目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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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슈 증류소(白州蒸溜所): 야마나시현 호쿠토시(山梨県北杜市白州町鳥原2913−1)
산토리에서는 증류소 투어(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현재 코로나로 오프라인 투어는 중지되어 있지만 리모트 투어가 가능합니다.
*산토리 위스키 리모트 증류소 투어: https://www.suntory.co.jp/factory/distillery/remote/
<닛카 위스키 증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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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치 증류소(余市蒸溜所): 홋카이도 요이치군(北海道余市郡余市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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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기쿄 증류소(宮城峡蒸溜所): 미야기현 센다이시(宮城県仙台市青葉区ニッカ1番地)
닛카 위스키에서도 2주 전부터 시간대별 예약을 통해 증류소 일반 견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인터넷 예약을 통해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 견학이 가능합니다(증류소에 따라 예약 페이지가 다릅니다).
*닛카 위스키 요이치 증류소 견학 신청 페이지(예약 필수) https://distillery.nikka.com/yoichi/reservation
*닛카 위스키 미야기쿄 증류소 견학 신청 페이지(예약 필수) https://distillery.nikka.com/miyagikyo/reservation
일본 위스키의 이름: 산토리의 ‘야마자키’, ‘하쿠슈’, 닛카의 ‘다케쓰루’, ‘요이치’, ‘미야기쿄’
일본에서 위스키를 구입하려고 할 때, 또는 이자카야나 바에서 위스키나 하이볼을 즐기려고 할 때 어려운 한자 이름이 적혀 있어 무엇을 골라야 할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대표적인 이름을 몇 가지 알아두면 보다 친숙하게 느껴져 쉽게 고를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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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崎 / 야마자키: 산토리 위스키의 야마자키 증류소에서 제조된 싱글 몰트 위스키. ‘싱글 몰트 위스키’는 보리로만 만든 몰트 위스키를 단일한 증류소에서 만든 원주를 사용해서 제조한 것. 알코올 도수 43%. ‘야마자키’, ‘야마자키 12년’, ‘야마자키 18년’, ‘야마자키 25년’ 발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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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州 / 하쿠슈: 산토리 위스키의 하쿠슈 증류소에서 제조된 싱글 몰트 위스키. 알코올 도수 43%. ‘하쿠슈’, ‘하쿠슈 18년’, ‘하쿠슈 25년’ 발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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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ントリーオールド / 산토리 오르도(산토리 올드): 1940년에 탄생한 뒤 전쟁으로 10년 뒤에 세상에 나온 블렌디드 위스키. 앞에서 소개한 산토리의 ‘가쿠빙’, ‘화이트’, ‘레드’도 모두 블렌디드 위스키. 알코올 도수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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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鶴 / 다케쓰루 : 퓨어 몰트(ピュアモルト) 위스키의 대표 주자. 닛카 위스카의 창업자이자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인 다케쓰루 마사타카에게서 따온 이름. 수량 한정 발매되어 구입이 쉽지 않음. ‘퓨어 몰트’는 일본에서만 사용되는 독특한 표현으로 제조 회사에 따라 싱글 몰트 위스키를 의미하기도, 블렌디드 위스키를 의미하기도 함. 알코올 도수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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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市 / 요이치: 닛카 위스키의 요이치 증류소에서 제조된 싱글 몰트 위스키. 알코올 도수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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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城峡 / 미야기쿄: 닛카 위스키의 미야기쿄 증류소에서 제조된 싱글 몰트 위스키. 알코올 도수 45%. 오크의 느낌을 강조한 요이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프루티한 느낌이 강하다고.
싱글 몰트 위스키는 증류소 이름이 상품명에 사용되고, 블렌디드의 경우는 별도의 이름을 붙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습니다.
*산토리 위스키 상품 소개 페이지: https://www.suntory.co.jp/whisky/products/0000000038/index.html
*닛카 위스키 상품 소개 페이지: https://www.nikka.com/products/
복잡한 역사 같지만 알고 나면 일본 위스키와 훨씬 친해진 느낌이 드는데요, 이번 기사의 내용이 일본 문화와 조금 더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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