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레비(木漏れ日、こもれび)’는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태양’이라는 뜻. 나무(木), 해(日), 눈(雪), 비(雨), 바람(風), 구름(雲), 풀(草), 꽃(花), 밤(夜), 마음(心)... 일본어에는 간단한 한자어가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예쁜 일본어들이 많습니다. 일본어 한자 공부가 어렵게 느껴질 때 꺼내보면 좋을 예쁜 일본어 단어들을 소개합니다.
<내용 구성>
눈, 비에 관한 예쁜 일본어
霜柱(しもばしら)/ 시모바시라
霜 / 시모 / 서리
柱 / 바시라 / 기둥
서리기둥=흙 속의 수분이 얼어, 지표에 돋아나는 기둥 형태의 얼음. 밟을 때 ザクザク(자쿠자쿠) 소리가 납니다.
細雪(ささめゆき) / 사사메유키
細 / 사사 / 자잘하다
雪 / 유키 / 눈
사사메유키=조용하게 흩날리는 자잘한 눈. 일본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의 1948년작 장편소설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사메유키(細雪)’ 대신 한자를 그대로 읽어 ‘세설’이라고 번역되습니다. 네 자매의 일상생활의 희비를 담은 작품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여 잘 알려졌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원제: 음예예찬(陰翳礼讃; いんえいらいさん)>>
건축, 미술 분야에서 널리 읽히는 다니자카 준이치로의 산문으로, 아직 전등이 들어오지 않던 시대, 생활과 자연이 하나가 되었던 시대에 일본의 미감, 예술, 감성에 대해 논한 산문입니다. ‘인에(陰翳; いんえい)’는 우리말로 ‘그늘’로 번역되었습니다.
雪明り(ゆきあかり) / 유키아카리
雪 / 유키 / 눈
明り / 아카리 / 빛
눈의 빛=쌓인 눈이 발하는 은은한 빛.
風花(かざはな) / 카자하나
風 / 카자('카제'는 다른 단어와 연결될 땐 ‘카자’라고 종종 발음됨) / 바람
花 / 하나 / 꽃
바람 꽃=맑은 날 흩날리는 작은 눈송이. 순백의 눈을 꽃송이에 비유한 표현으로, 벚꽃의 나라 일본에 어울리는 감성인 듯합니다.
時雨(しぐれ) / 시구레
時 / 시 / 때
雨 / 구레 / 비
시구레=한때의 비.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걸쳐 ぱらぱら(파라파라)... 잠깐씩 내리고 그치며 가볍게 지나가는 비. 비는 ‘아메’, ‘사메’, ‘다레’, ‘구레’ 등 다양한 음으로 읽혀 단어마다 읽는 법에 주의해야 합니다. ‘시구레’가 내리면 맑은 겨울 날씨가 이어진다고 하네요. 그래서 하이쿠에서는 ‘겨울’을 뜻하는 시어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계절을 나타내는 하이쿠의 기고(季語)>>
5, 7, 5. 총 17자를 규칙에 맞게 읊는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俳句). 글자 수만 맞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이쿠의 중요한 규칙이 바로 ‘기고(季語)’, 계절어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이쿠의 계절어와 그에 대한 해설을 담은 사전을 『歳時記(사이지키)』라고 하는데요. 하이쿠를 짓는 ‘하이진(俳人)’들에게는 필수적인 책입니다. 많은 경험이 쌓이면 저절로 외워지는 단어들도 많겠죠?
遣らずの雨(やらずのあめ) / 야라즈노아메
遣らず / 야라즈 / 보내지 않음(보내다는 의미의 ‘야루(遣る)’의 부정형)
の / 노 / ~의, ~하는
雨 / 아메 / 비
야라즈노아메=방문한 손님이 돌아가는 것을 막는 듯한 비. 비는 비인데, 님 가시지 말라고 내리는 비! 이렇게 하나둘 비에 이름을 붙이다 보니, 모든 비에 예쁜 아다나(あだ名;별명)을 붙여보고 싶네요.
추천 기사
풀, 꽃에 관한 예쁜 일본어
草枕(くさまくら) / 쿠사마쿠라
草 / 쿠사/ 풀
枕 / 마쿠라 / 베개
풀베개=여행. 옛 사람들이 여행 가서 풀을 베고 잤다는 데서 유래한 예쁜 표현입니다. 그런데… 풀베개하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으시다고요? 책을 좋아하시는군요! ‘풀베개’, 바로 나쓰메 소세키의 1906년작 소설의 제목입니다. 영어판의 제목은 (by Alan Turney)로 전혀 다른 것도 재미있습니다. 어떤 제목이 더 잘 어울리는지는 책을 직접 읽고 판단해보세요~
草紅葉(くさもみじ) / 쿠사모미지
草 / 쿠사/ 풀
紅葉 / 모미지 / 단풍
풀 단풍=가을에 풀색이 변하는 것. 풀에도 단풍이 들 수 있다는 것. 단순한 자연의 사실인데 그동안 무심했던 것 같네요.
忘れ花(わすればな) / 와스레바나
忘れ / 와스레(동사 ‘忘れる’가 다른 명사와 합쳐질 때의 형태) / 잊어버린
花 / 바나(‘하나’는 다른 명사에 붙으면 주로 ‘바나’라 읽힘) / 꽃
잊어버린 꽃=우리가 꽃에 대해 잊고 있을 때 피어나는 꽃.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주로 11월경)에 따뜻하고 온화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데(이 시기의 날씨를 ‘코하루비요리(小春日和)’라고 함. ‘작은 봄날씨’ 정도의 뜻), 이때 벚꽃, 매화, 배꽃, 철쭉 등이 가끔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카에리바나(帰り花)’라고도 합니다.
구름, 바람에 관한 예쁜 일본어
雲足(くもあし) / 쿠모아시
雲 / 쿠모 / 구름
足 / 아시 / 발
구름발=구름의 움직임. ‘雲足が速い(쿠모아시가 하야이)’라는 표현으로 자주 쓰입니다. 구름발이 빠르다. 즉 바람이 세서 구름이 하늘을 빠르게 지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秋扇(あきおうぎ) / 아키오우기
秋 / 아키 / 가을
扇 / 오우기 / 부채
가을부채=가을이 되어도 여전히 쓰는 부채. 또는 어느 틈엔가 쓰지 않게 된, 잊혀진 부채. 역시 하이쿠의 계절어(기고)로 많이 쓰이는 ‘아키오우기’.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드는 분위기에 담아낸 아름다운 단어인 듯합니다. 일본의 여름을 대표하는 둥근 형태의 부채는 ‘우치와(団扇、うちわ)’, 접고 펼치는 부채를 ‘센스(扇子、せんす)’라고 하며, ‘아키오우기’는 ‘秋扇(슈센; しゅうせん)’이라고 읽기도 합니다.
凪(なぎ) / 나기
불어오는 바람의 특징에 따라 예쁜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는 바람이 없는 ‘무풍(無風)’를 뜻하는 ‘나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의 모양을 보면 ‘바람 풍(風)’의 안에 ‘그칠 지(止)’ 가 들어가 있습니다. 참 그럴 듯하죠?
바닷가 지역에서는 낮에 불던 해풍이 밤에 육풍으로 바뀐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바람이 바뀔 때 ‘나기’, 즉 무풍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저녁의 무풍 상태를 ‘유나기(夕凪、ゆうなぎ)’라고 하고, 다시 아침이 되어 육풍에서 해풍으로 바뀔 때 잠시 바람이 없는 것을 ‘아사나기(朝凪、あさなぎ)’라고 한다고 합니다. 의미를 알고 나면 더 아름답게 느껴져 바닷가에 가서 바람이 아닌 ‘나기’를 기다려보고 싶어집니다.
밤에 관한 예쁜 일본어
可惜夜(あたらよ)/ 아타라요
可惜 / 아타라 / 아쉬운
夜 / 요(‘요루’를 ‘요’라고도 많이 읽음) / 밤
아쉬운 밤=날이 밝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멋진 밤. 수식 없이 명사로 만들어둔 것이 멋집니다.
花明り(はなあかり) / 하나아카리
花 / 하나 / 꽃
明り / 아카리 / 빛, 등불
꽃등불=벚꽃이 만개해 밤에도 그 주변의 어둠이 살짝 밝게 느껴지는 것.
마음에 관한 예쁜 일본어
面影(おもかげ) / 오모카게
面 / 오모 / 얼굴
影 / 카게 / 자취(모습), 환영, 그림자
얼굴 그림자=기억에 남아 마음 속에 떠오르는 얼굴, 모습, 자취. ‘面(얼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듯한 선명한 이미지를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恋蛍(こいぼたる) / 코이보타루
恋 / 코이 / 사랑
蛍 / 보타루(‘호타루’가 다른 단어 뒤에 붙을 때의 발음) / 반딧불이
사랑반딧불. 사랑을 할 때의 애타는 마음을 반딧불이의 빛에 비유한 말. 이제부터 ‘사랑은 반딧불처럼’이라고 가끔 떠올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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