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음식, 일본 요리인 ‘일식’은 일본어로 ‘와쇼쿠(和食)’라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즐겨먹는 음식인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함바그(함박 스테이크)’는 뭐라고 할까요? 바로 ‘양식’에 해당하는 ‘요쇼쿠(洋食)’. 일본 음식에는 스시, 가이세키 요리 등의 ‘와쇼쿠’뿐 아니라 ‘요쇼쿠’도 포함시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양식 요리들과 관련된 일본 문화를 알아봅니다.
<내용 소개>
일본에서 말하는 ‘양식(洋食; 요쇼쿠)’이란?
한국에서 '양식'이라고 하면 주로 떠올리는 것이 파스타(스파게티), 스테이크 등이 아닐까 싶은데요. 일본에서 ‘양식(洋食; 요쇼쿠)’이라고 하면 넓은 의미에서는 ‘서양 요리’와 ‘서양풍 요리’ 전반을 가리키고, 좁은 의미에서는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서양풍 요리'를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는 에도시대 말~메이지 시대, 근대화의 시기에 생겨난 요리들로 오늘날에는 '요쇼쿠야(洋食屋)'라고 불리는 양식 음식점이나 카페 등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양식(洋食)'이란 말이 처음 쓰인 것은 1882년(메이지 15년),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선 교육자이자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의 <황실론(帝室論)>이라는 저서에서였습니다. 일본인들은 그때까지 일부 산간 지방을 제외하고는 고기 요리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메이지 정부가 국민들의 체격 향상을 위해서 육식을 권장하면서 조금씩 고기를 사용한 요리들이 일반에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보급 초기에는 식재료 수급이 쉽지 않아 서양 요리를 똑같이 구현하는 것이 어렵기도 해서 아예 '일본인에게 맞는 양식'으로 변형을 한 형태로 보급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서양 요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서양에는 없는 '일본에만 있는 서양풍 요리'들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정통 서양 요리의 경우 일본에서는 '이탈리안(イタリアン)', '프렌치(フレンチ)', ‘포르투갈 요리(ポルトガル料理)’ 등 음식의 출신국명을 포함하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일본에서는 '양식', 한국에서는 '일본 가정식'
일본에 풍부한 굴, 새우, 아지(전갱이) 등을 사용하는 튀김 요리인 '카키후라이(굴튀김)', '에비후라이(새우튀김)', '믹스후라이(굴+새우+전갱이 후라이)'. 일본의 대표적인 양식 메뉴들입니다.
위 사진의 ‘믹스후라이 정식(ミックスフライ定食)’처럼 일본의 요쇼쿠들은 밥, 된장국과 같이 '정식', 즉 ‘테쇼쿠(定食)’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밥과 국이 나와서인지 한국에서는 일본 양식 메뉴의 정식을 ‘일본 가정식’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양식이란, 밥과 함께 먹으며,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서양요리(洋食とは米飯に合わせて食す、日本独自の進化を遂げた西洋料理)”-일반사단법인 일본양식협회(*)
*참조: https://yoshoku.themedia.jp/pages/570676/page_201607261754
추천 기사
일본 ‘양식(요쇼쿠)’의 대표 메뉴들
일본에서 ‘양식’으로 분류되는 메뉴들을 살펴보는 것도 개념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オムライス / 오무라이스(오므라이스)
・カレーライス / 카레라이스
・ハヤシライス / 하야시라이스
・ミックスフライ / 믹스후라이
・ハンバーグ / 함바그
・ピラフ / 필라프
・ポークソテー / 포크소테
・ナポリタンスパゲッティ / 나폴리탄 스파게티
・ミートソーススパゲッティ / 미트소스 스파게티
・ロールキャベツ / 롤캬베츠
・グラタン / 그라탕
・ドリア / 도리아
이런 메뉴들을 보면 '아~ 한국의 경양식 같은 거구나~' 하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경'은 '가볍다', '간단하다'는 뜻으로, '간단한 서양식 일품요리'를 가리키는데요. 일본에는 '경양식(軽洋食)'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가벼운 식사를 가리키는 말로는 ‘경식’이라는 뜻의 '軽食(케쇼쿠)'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소개된 메뉴들 중 일본 문화와 관련해 알아두면 좋은 메뉴 몇 가지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일본 양식 대표 메뉴 1: 하야시라이스
한국에서는 '하이라이스'라고도 불리는 '하야시라이스'. 이름의 유래에 따라서는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레토르트 카레, 하야시라이스 회사인 '에스비(S&B エスビー食品株式会社)'의 Q&A(00369)에 올라온 질문과 답변(*)을 살펴볼까요?
Q. 하야시라이스 이름의 유래를 알려주세요.
A. 다음과 같은 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1. 하야시상(林さん)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
2. 하야시상이라는 사람이, 매일 와서 주문했다.
3. 요코하마의 하야시상이 만들었다.
4. 마루젠의 창업자 '하야시 유우테키(早矢仕有的)' 씨가, 밥과 반찬이 한 접시에 올라가는 요리로 고안해, 에도 말기부터 메이지 초기에 걸쳐 사내 식당에서 낸 것이 시작.
5. 소고기를 잘게 썰어 넣은 요리를 표현하는 'ハッシュ・ド・ビーフ(해쉬드 비프; Hashed beef)'의 발음이 변형되어 '하야시라이스'가 되었다.
참고로 마루젠의 창업자 하야시 유우테키는 메이지 초기에 활약한 일본의 기업가로, 본래는 의학을 공부하고 고향에서 의원을 개업했던 의사였습니다. 그러다 서른 살에 게이오기쥬쿠에 입학해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네덜란드학, 영어학을 배우고 무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서점 마루야(書店丸屋)'(현재의 '마루젠준쿠도 서점'의 전신)을 개업했습니다. 『마루젠 백년사(丸善百年史)』라는 책에는 하야시 유우테키 씨가 친구들이 방문했을 때 고기와 야채를 푹 삶아 밥과 함께 낸 것이 '하야시라이스'가 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참고: 마루젠 신추보가쿠 레토르트 시리즈의 ‘하야시 비프’ *출처: '에스비(S&B エスビー食品株式会社)'의 Q&A(00369)
하야시라이스의 포인트, ‘데미글라스소스’
‘소고기’, ‘양파’와 함께 하야시라이스의 맛을 내는 주역은 ‘데미글라스소스(デミグラスソース)’. 양파, 버터, 밀가루에 물, 중농소스(中濃ソース), 우스터소스(ウスターソース), 케첩, 간장, 설탕, 레드와인을 섞어 만드는데요. 일본에서는 '중농소스'와 '우스터소스'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집에서 '지카세(自家製; 수제)' 하야시라이스 만들기에 한 번 도전해보세요~ 참고로 데미글라스소스는 오므라이스에도, 함바그에도 잘 어울립니다.
일본 양식 대표 메뉴 2: 도리아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일본 양식 대표 메뉴는 ‘도리아’입니다. 그라탕 그릇에 제공되는 오븐 요리인지라 ‘그라탕’인가 싶은데요. 일본의 양식 메뉴에는 ‘그라탕(グラタン)’과 별도로 ‘도리아(ドリア)’라는 이름으로 많이 올라 있습니다.
도리아는 1930년경 ‘요코하마 호텔 뉴그랜드’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이야기됩니다. 당시 총요리장을 맡고 있던 스위스인 요리사 살리 와일(Saly Weil) 씨가 몸이 좋지 않은 외국인 손님을 위해 목넘김이 좋은 요리로 즉흥으로 만들어냈다고 하는데요. 당시에는 버터라이스에 크림에 중하(새우)와 베샤멜소스(화이트소스, 크림소스)를 더해 오븐에서 구워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새우가 얹어진 도리아는 ‘시푸드(해산물) 도리아’, ‘에비(새우) 도리아’ 등으로 불립니다.
여기서 잠깐>> ‘도리아’와 ‘그라탕’의 차이
도리아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요리, 그라탕은 프랑스 요리라는 것이 큰 차이입니다. 또 하나, 도리아에는 버터라이스, 즉 ‘밥’이 들어 있지만, 그라탕은 ‘생선·고기·계란·채소·면류’를 다양하게 사용하되 밥을 넣지는 않는다는 차이점도 있습니다.
지금도 요코하마 호텔 뉴그랜드의 레스토랑에서는 ‘쉬림프(새우) 도리아’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와일 씨의 제자 요리사들을 통해 다른 호텔, 레스토랑으로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도리아’가 대표 양식 메뉴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도리아는 스위스에도, 프랑스나 이탈리아에도 없는 일본의 고유한 양식으로, ‘도리아’라는 이름도 제노바 명문가 출신 해군 제독인 ‘앙드레아 도리아(Andrea Doria)’[1466~1560]의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합니다.
*참고: 요코하마 호텔 뉴그랜드 <ホテルニューグランド発祥の伝統料理>
[WeXpats Guide 관련 기사] 쇼가야키, 포크소테, 나폴리탄, 하무카츠는 어떤 요리?
일본 양식 대표 메뉴 3: 오므라이스
너무 유명하지만 그래도 ‘일본 양식 대표 메뉴’로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 ‘오므라이스(オムライス)’. 프랑스어 ‘오믈렛’과 영어의 ‘라이스’를 섞어 만든 일본어 이름처럼, 일본에서 만들어진 오리지널 양식입니다. 도쿄 긴자의 양식 레스토랑 ‘렌가테이(煉瓦亭)’에서 1900년경에 개발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일본어로 ‘마카나이(まかない)’라고 하는 직원용 식사로 만들어져 바쁜 요리사들이 한 손으로는 요리를 하면서, 한손에 숟가락을 들고 먹었다고. 이 모습을 우연히 본 손님이 먹고 싶다고 해 ‘라이스 오믈렛’이라는 이름의 메뉴로 손님들에게 제공되었던 것이 오므라이스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현재도 영업하는 렌가테이에서는 오므라이스 외에도 가츠렛(돈가츠), 에비후라이, 카키후라이, 하야시라이스, 함바그 스테이크, 스파게티 나폴리탄 등 일본 양식을 대표하는 메뉴들을 두루 맛볼 수 있습니다.
오므라이스의 케첩밥, ‘치킨라이스(チキンライス)’
'오므라이스에 들어가는 케첩밥'이니 '케첩라이스(ケチャップライス)'라고 하면 편할 텐데, 메인 재료인 '닭고기'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오므라이스의 케첩라이스는 '치킨라이스(チキンライス)'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닭고기, 양파, 버섯 등을 잘게 썰어 밥과 함께 볶다가 토마토케첩을 더하면 완성~
치킨라이스의 역사는 '고로케' 등의 양식이 도입된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1912~1926)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단, 처음에는 토마토케첩을 사용하지 않아 색은 흰색이었고 '칫켄라이스(チッケンライス)'라고 불렸다고. 다이쇼 말기~쇼와 시대(昭和時代), 즉 1930년을 전후로 토마토케첩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자선회에서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치킨라이스’를 만들어주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서양의 기념일인 크리스마스이니 만큼 서양풍의 영양가 높은,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치킨라이스'를 제공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치킨라이스에 케첩이 들어가지 않을 경우 '버터라이스(バターライス)'라고 불러 구분합니다. 오므라이스에는 어떤 라이스가 어울리는지에 대한 호불호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다양해 재미있었습니다. 양식당으로 유명한 도쿄의 시세이도 팔러(資生堂パーラー)의 치킨라이스는 토마토케첩이 아닌 토마토소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토마토케첩을 사용한 치킨라이스는 별도의 메뉴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참고: 도쿄 시세이도 팔러의 <치킨라이스>
일본 양식을 먹을 수 있는 곳들
일본 양식,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은데 어디에 가면 먹을 수 있을까? ‘지역+洋食’로 검색하면 양식을 맛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게들이 나옵니다.
・요쇼쿠야(洋食屋): 양식 메뉴를 판매하는 가게.
・테쇼쿠야(定食屋): 밥과 양식 메뉴를 셋트인 ‘테쇼쿠’로 제공. 요쇼쿠야와 달리 ‘우동’, ‘소바’ 등의 일본 요리도 다양하게 판매.
・벤토야(弁当屋): 도시락 가게.
・파미레스(ファミレス): 패밀리 레스토랑(ファミリーレストラン).
・카페(カフェ)
・킷사텐(喫茶店)
[참고] 일본의 ‘카페’는 커피와 디저트 정도만 파는 한국의 ‘카페’와 달리 본래 ‘음식점’으로 영업 허가를 받아 알코올류, 조리가 복잡한 요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반면 ‘킷사텐’은 ‘킷사텐’ 영업 허가를 받기 때문에 알코올류 취급이 불가하며 가열 등 단순 조리 외에는 조리된 음식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모든 카페가 알코올을 취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알코올 취급이 가능하다는 의미. 가게의 판단에 따라 알코올을 취급하지 않고 차, 커피만 파는 카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일본 음식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앞으로 ‘양식’에도 관심을 갖고 즐겨보세요~
<관련 기사>
‘주카’, 일본의 중화요리들 -> 탄탄멘, 슈마이, 안닌도후: 일본에서 중화요리 즐기는 법
‘칸코쿠료리’, 일본의 한국 음식들 ->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일본 친구와 한국 음식 먹기